-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휴전> 등
며칠 전 엄마의 생신이셨습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절차를 거쳐 칸막이 저 편에 계신 엄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뵙던 것보다 한층 더 쪼그라든 엄마는 마치 오랫동안 당신을 찾지 않은 우리를 원망이라도 하는 듯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이른바 '코시국'에 본의가 아니었어도 병원에 홀로 계신 엄마 입장에서는 섭섭하셨나봐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지난 주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폐혈증으로 인해 열이 오르고 식사를 거의 못하다시피 하시니 기력이 떨어져 사람을 알아보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 되셨답니다. 짬뽕 한 그릇을 비우며 이런 게 먹고 싶었다 하셨던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노년의 시간은 기약할 수 없네요. 아니 사실 모든 시간이 그럴 지도요.
어머니를 뵙고 오니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가 남의 얘기같지 않습니다. 인디아 데자르댕이 글을 쓰고 파스칼 블랑셰가 그림을 그린 2011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그림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마르게리트 고댕 할머니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요',
자발적 히키코모리 할머니
할머니의 삶은 표지 속 할머니가 들고 계신 '스노우볼'과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떨어진 할머니는 스노우볼처럼 삶의 공간이 축소되더니 이제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손수 '성찬'을 차릴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이 다 모이는 파티는 부담스럽습니다. '너희끼리 재밌게 놀아! 내 걱정은 하지마!'라고 하십니다. 여든 두 번의 미사를 봤으니 자신의 믿음과 존경심을 증명할만 하다며 열 다섯 개나 되는 성당 계단을 마다했습니다. 60년을 함께 한 남편도 가고, 서로의 아이에게 대모를 해주던 친한 벗도 가고, 이제 자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크리스마스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철렁합니다. '찾아올 이는 저승사자 밖에 없는데......' 이제 죽을 일밖에 남지 않았다면서도 할머니는 낙상이라도 할까 조심스럽습니다. 자신의 집을 두드린 이가 '강도'가 아닐까 노심초사합니다.
제 엄마도 마르게리트 할머니처럼 그랬어요.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며 혹시나 다칠까 저어하며 집 밖을 나서지 않으셨어요. 아끼느라 쓰지도 못한 채 낡아버린 어머니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게 꼭 '삶'을 아꼈던 어머니의 모습같아서 심정이 복잡해졌습니다.
마르게리트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밤 찾은 불청객들 덕분에 자발적 히키코모리의 생활에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눈내린 밤 밖으로 나선 할머니는 깨닫습니다. 당신은 아직 '삶' 속에 있다는 사실을요. 한겨울 추위조차 할머니에게는 '살갗을 간질이게' 느껴집니다. 마치 산타처럼 빨간 코트를 입고 문밖으로 나선 할머니, 여전히 ing인 삶을 선물로 준 이는 바로 삶의 두려움을 넘어선 '할머니 자신'입니다.
젊은 청년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반면 존 패트릭 루이스가 글을 쓰고 게리 켈리가 그림을 그린 <크리스마스 휴전>은 비감합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살해 사건에 강대국이 저마다의 이익을 내세워 시작된 1차 대전은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참호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책을 열면 '당신을 원한다'는 모병 포스터 앞에 앳된 젊은이가 서있습니다. 전쟁이 터진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무 살이 될 오웬 데비이스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고향 웨일스를 떠난 여행, 그건 프랑스 해협을 넘어 벨기에를 지나 프랑스까지 수천 km로 이어진 서부전선 전장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청년을 맞이한 건 길고 지리한 공방전 속에 추위와, 참호 주변에 치울 수도 없이 쌓인 군인들의 시체, 발이 썩이 들어가는 병,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 귀조차 뜯어먹는 쥐들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적들의 급습으로 병사들이 볼링핀처럼 쓰러져가는 중에도 고향에서는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꼭 함께 보내자'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브의 저녁, 이상하게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독일군 진영에서 불을 밝힌 나무들이 빛났습니다. 그리고 독일 병사의 '스틸레 나흐트(고요한 밤 거룩한 밤)'가 들려왔습니다. 목소리가 좋아 성가대를 하라던 칭찬을 받던 오웬은 용기를 냈습니다. '저 들밖에 한 밤중에 양틈에 자던 목자들~', 적군과 아군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서로에게 '괴물'이었던 양국 군인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참호 밖으로 나와 다가섰습니다. 초콜릿도 바꾸고, 단추도 나누고, 가족의 사진도 보여주었습니다. 서로 이발을 해주고, 어울려 노래도 부르던 이들은 동이 트자, 참호 주변에 있던 '적'들의 시체를 서로 묻어주었고, 돼지 한 마리의 행운을 나누었습니다.
나무의 불이 꺼지고 날이 밝았습니다. 정찰을 위해 사격용 발판에 올라선 오웬은 잠시, 들판이 푸르러지기 전에 고향에 돌아갈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꿈은 거기서 끝납니다.
어제는 서로가 어울려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이던 이들이 하룻밤이 지나고 다시 서로에게 총을 겨눕니다. 이게 인간이 벌인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 전장에서 이제 막 스물이 된 청년은 그 생을 다합니다. 그게 겨우 전쟁의 첫 해인 1914년이었습니다. 1918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30여개국에서 온 천만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이라고 기록된 픽션, 그렇다면 청년 오웬에게 온 '크리스마스 선물'은 기적처럼 벌어진 '휴전'일까요? 적군과 아군에게서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었을까요? 그게 아니면 앳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소총수의 저격이었을까요? 청년이 본 마지막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무 것' 대신 너와 나
12월이 되자마자 '코시국'에도 변함없이 흘러나오는 캐롤로 인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입성하게 됩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로 부터 선물을 받았던 기억 때문일까요?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이 시절이 되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듭니다.
패트릭 맥도넬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보다 멋진 선물은 없어>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고양이 무치와 강아지 얼은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특별한 '날 무치도 얼에게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가진 얼은 필요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얼뿐만 아니라,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로 가득차 있는데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없어!' 고민하던 무치, 무치의 진심어린 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치가 선물한 상자를 여니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치는 말합니다. '그래, 아무 것도 없어, 하지만, 너랑 내가 있잖아.' 얼은 무치를 꼭 껴안아줍니다. '아무 것' 대신 '너와 내'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가 되시기 바랍니다. 메리 해피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