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사적인 유투브 탐방>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레 tv를, 아니 tv와 연결된 유투브를 켜게 된다. 예전에 직장에 돌아온 사람들이 왜 손에서 tv 리모컨을 놓지 못하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 내가 딱 그 신세다. '정화의 시간?' , 이게 내가 붙인 이 시간의 '합리화된 이름표'다. 바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마치 밖에서 입은 옷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듯이, 나의 정신에도 밖에서 벌어졌던 온갖 일들을 정화시키는 통과 의례가 필요한 것이다. 소파에 누워 편안하게~, 처음에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자연스레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펼쳐진 유투브로 옮겨갔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정화의 시간'만이 아니다. 나이가 드니 쉬이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밤새 화장실만 들락거리다 창문 밖이 훤해지기조 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 수면 유도제를 먹어보니, 정작 대낮이 돼도 잠이 깨지 않았다. 이 또한 아니다 싶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음악이란 게 때로는 상념을 더욱 깊게 만들기도 하니, 또 이건 아니다 싶어, 듣기 시작한 것이 유투브였다. 말 그대로 '너네는 보니? 나는 듣는다'였다. 거기에 맞춤인 콘텐츠, 바로 팟캐스트로 시작된 <지윤&은환의 롱테이크>였다.
▲ 지윤 &은환 롱테이크 © 유투브
김지윤이란 이름은 생소했다. 그녀가 mbc <백분 토론> 사회자였다라던가, tbs <색다른 시선 김지윤입니다>를 진행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금시초문이었다. 외려 김지윤 박사를 알게 된 건 인기 tv 예능 <유퀴즈 온더블럭>이 아니라 그녀가 게스트로 출연한 또 다른 유투브를 통해서 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이 소탈해 보였다.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온다고 말하는 그녀, 우리 사회에서 여성 정치학자로 자신의 입지와 지평을 넓혀온 쉽지 않은 여정이 읽혀져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삼스레 그녀의 유투브 채널 김지윤의 지식 play에 들어가 그녀가 전하는 미 대선 향방에 대해 듣는 건 또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본업 말고 하는 유투브가 또 있었다. 바로 <지윤& 은환의 롱테이크>였다. 1년 전 팟캐스트로 시작하여 얼마 전 구독자 5만 돌파했다고 기쁨의 라이브를 한 유투브 채널이다.
그런데 김지윤 박사는 알겠는데, 전은환 씨는 누구? 검색을 해보니 최연소 삼성전자 임원을 역임한 분이다. 뼈를 갈아 직장 생활을 했다고 김지윤 박사가 인정하는, 현재는 대학에서 국제 경영을 가르치고 있는 분이셨다. 흥미로운 건 김지윤 박사와 전은환 두 사람이 연세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미국 유학을 거쳐 30여 년 동안 우정을 나눈 사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과도 달랐다는데,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늘 서를 존중했다는, 그럼에도 결국은 '운명'이었다라는 두 사람의 우정이 흥미로웠다.
김지윤 박사 말로는 자기가 사람들 만나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걸 싫어하는데 전은환 씨를 만나서는 결코 그런 적이 없다고 장담하는 친구, 경영은 물론,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일본에, 미국에, 유럽으로 동분서주할 만큼 문화적 식견도 깊다는데, 거기에 두 사람은 50 줄의 나이에도 이 책이 좋으니 읽어보라 서로 권할 만큼의 지적 향유를 공유하는 사이란다. 달변인 김지윤 박사와 나긋나긋 설득력이 넘치는 전은환씨 두 사람이 오손도손 나누는 대화는 수다와 지식의 경계를 오가며 귀를 열게 만든다. 거기에 최근 들어 종종 출연하는 '문과생' 지윤과 은환의 한계를 거뜬히 넘어서는 핵물리학과 출신의 언니 박지영까지 합세해 문, 이과를 망라한 '지대넓깊'(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깊은 지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 지윤 &은환 롱테이크 © 유투브
찾아보면 유투브에는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갑론을박 '썰의 향연'이 넘쳐난다. 때로는 신간들이 이 유투브 저 유투브로 회자되고, 뭔가 이슈가 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거기에 대해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윤& 은환의 유투브>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건 색채가 분명한 made by 지윤& 은환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해석이었다.
예를 들자면,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영국의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두 사람,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와 재클린 캐네디, 오나시스라는 한 남자를 둘러싼 세기의 사랑을 한 두 여성, 가십과 역사를 넘나들며 자신의 운명 앞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여성들의 이야기로 귀착된다. '누군가 나를 지켜줬으면?' 이었나, 그게 아니라 '스스로 나를 지켜 커나갈 겄인가'였나 그래서, 사랑에 의존적이었는가, 아니면 사랑조차 이용하려 했는가, 그녀들을 통해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 지윤 &은환 롱테이크 © 유투브
이렇게 이야기는 가벼운 듯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의 갈래를 펼친다. 여성을 가사 노동으로 부터 자유롭게 만든 제 1의 공헌자 세탁기에 대한 영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공학 박사 박지영 박사의 세탁기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 부터 시작하여, 전은환 박사가 세탁기 발전의 역사를 펼쳐내면, 거기에 김지윤 박사가 세탁기의 대중화에 당시 참정권 운동을 비롯하여 여성들의 사회적 운동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쳤다는 해석이 함께 한다. 우리 사는 세상의 '물건' 하나가 그저 물건이 아니라, 정치와 역사와 과학의 결정체라는 신박한 해석에 듣는 이조차 전율을 느끼게 된다.
미술과 관심이 큰 전은환 씨 덕분일까, <지윤&은환의 롱테이크>는 구겐하임을 비롯하여, 메트로 폴리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영국 내셔널 갤러리 등 다양한 미술관과 미술품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 또한 두 사람의 개성이 한껏 살려서, 예를 들면 최근 게티 미술관을 다녀온 김지윤 박사가 T답게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잘 표현한 영국의 국민 화가라고 칭해지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그림이 좋다고 한데 대해, 미술에 조예가 깊은 전은환 씨는 마치 이발소 그림처럼 사람들이 쉬이 관심을 가지는 화풍의 그림을 양산한 터너를 훌륭한 화가라고 할 수 있을까라며 의문 부호를 더한 것처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드는 불협화음이 또한 이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만드는 주요한 매력이 된다.
'올드머니 룩'을 설명하는데 LVMH의 영향력이 등장하듯 그 어떤 화두라도 두 사람의 수다를 거치면 신선하고 맛깔난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책, 그리고 초콜릿, 여행, 미술, 음악, 심지어 마약, 죽음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한 지적인 수다의 향연, 골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