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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이란 장르와 박보영이란 장르가 만났을 때

- <멜로 무비>

by 톺아보기

사랑만큼 많은 이야깃거리가 또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랑 이야기를 섭렵하고, 드라마와 영화를 봐도, 막상 사랑하는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첫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사랑의 묘약은 언제나 우리를 서툴고 유치하게 만들어 버리고 마니 말이다. 어디서 본 듯하지만 또 새로운 사랑 이야기, 2월 1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멜로 무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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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 무비 © 넷플릭스


다시 만난 <그해 우리는>의 작가와 배우

<멜로 무비>를 보는 데 있어 우선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그해 우리는>에 이어 다시 작가 이나은과 최우식이 만났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이었던 국연수(김다미 분)와 매일 잠만 자던 전교 꼴등 최웅, 본의 아니게 다큐를 찍게 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지만, 너무 다른 삶의 조건이 결국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었다. 첫 다큐를 찍었을 때부터 10년이 흐른 후 후일담처럼 다시 다큐를 통해서 만나게 된 두 사람 , 바로 이게 <그해 우리는>의 기본적 서사이다.


드라마에서 최우식이 연기한 최웅은 늘상 잠만 자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나른한 밥집 외아들이었다. 그래서 나무늘보처럼 늘상 밥집 앞 평상에 늘어져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던 아이, 글로만 봐서는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이 캐릭터가 최우식이란 배우를 통해 어쩐지 정이 가고 보살펴주고 싶은 아이로 재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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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무비 © 넷플릭스


공개된 <멜로 무비>의 주인공 고겸도 최웅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허허실실 최웅을 탄생시켰던 이나은 작가는 이번에도 최우식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고겸이란 인물을 '착붙'으로 만들어 낸다. 어린 시절부터 비디오 테이프만 있으면 남 부러울 것이 없었던 아이 고겸, 그의 말에 따르면 다행인 건 그와 그의 형이 비디오점에 세를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린 고겸을 홀로 놔두고 늘 일을 다녀야 했던 형은 혼자 남은 겸이를 걱정했지만 겸이는 재미있는 비디오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자란 겸이는 청소년기에는 비디오 가게 알바를 했고, 드디어 풍운의 꿈을 안고 영화 배우가 되기로 마음 먹은 후 촬영장의 단역으로 여러 배역을 종횡무진했다. 자신의 역할이 없어도 그저 영화가 좋아서 촬영장에 출근하는 해맑은 청년, 마치 '최우식이 최우식을 하듯이' 극 중 친구들의 말처럼 '속도 없고 눈치도 없는' 고겸을 탄생시킨다.


앞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살인자 ㅇ난감>에서 최우식은 본의 아니게 살인자가 되고 나중에는 기꺼이 살인을 행하는 인물로 나온다. 주인공 이탕이라는 인물을 최우식이라는 배우가 했기에 드라마의 극단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이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최우식은 전교 꼴등에 집앞 평상에서 빈둥거리든, 홀로 비디오만 보다 시네마 키드가 되어 단역을 전전하는 청년이 되어도 그런가 보다 한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도 다시 되돌아 보지 않을 이웃집 청년같은 친근한 외모와, 그보다 더 이물감 없는 그의 편안한 연기가 그가 하는 어떤 캐릭터에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러려니 하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어느 틈에 '최우식'이란 장르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드라마 속 촬영장에 매일 출몰하여 이러저러한 단역을 섭렵하며 감독에서 부터 촬영장 그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고겸이, 딱 바로 최우식이다 싶은 드라마. 그렇게 <멜로 무비>의 프롤로그는 이러한 최우식이란 '장르'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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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무비 © 넷플릭스


그렇게 최우식이란 장르가 드라마의 씨실이 된다면, 거기에 이 드라마를 <그해 우리는>과 다른 드라마로 색을 입히는 건 박보영 배우이다. 두 사람이 동갑이란 게 무색하게 이미 영화 <늑대 소년(2012)> 부터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 <힘쎈 여자 도봉순(2017)> 등에서 예의 당차고 똑 부러지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로코 드라마를 제패한 바 있다.


영화가 좋아, 무비가 좋아, 하지만

<멜로 무비>에서 박보영이 연기한 김무비는 아빠의 죽음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를 너무 좋아했던 아버지처럼 촬영장에서 스탭으로 일하지만, 그녀는 그게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이라는데 강하게 부정한다. 외려 아버지처럼 몸과 마음을 다하지 않아도, job으로 영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것처럼. 최우식이 최우식을 하듯이, 박보영이 박보영을 하며 드라마는 시작된다.


그렇게 그 누구보다도 사무적으로, 하지만 성실하게 현장을 누비는 그녀를 고겸이 발견한다. 그리고 중의적인 의미는 아니라면서도 '영화가 좋다'며 자꾸만 그녀 주위를 고겸이 맴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랑 이야기도 '해피'한 이벤트만으로 서사를 꾸려갈 수 없듯이, <멜로 무비> 속 두 사람은 이른 이별을 한다. 대문자 T처럼 굴던 김무비가 어렵사리 고겸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는데, 고겸이 사라진 것이다. 무려 5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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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무비 © 넷플릭스



<그해 우리는>에서 10년 만에 만난 연인을 통해 사랑의 스텝을 다시 차곡차곡 밟아갔던 이나은 작가, 이번에는 '사랑인가?'하고 설레던 두 사람을 생이별시켰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5년의 시간 동안 쌓인 원망과 미안함이란 짐을 짊어지고 다시 사랑의 첫 발을 내딛는다.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둘 사이의 곡진한, 혹은 기꺼이 오해를 살만한 설정들을 뒤로 하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래서 조심스레 서로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해 우리는>이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게 10년 만에 만난 최웅과 국연수가 지나온 시절을 복기하고, 이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을 돌다리도 두드리듯 한 걸음 한 걸음 건너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을 통한 성장과 성숙을 말했다. <멜로 무비> 역시 5년 만에 만난 고겸과 김무비, 그리고 헤어진 지 7년 만에 다시 만난 고겸의 친구 홍시준( 이준영 분)과 손주아(전소니 분)를 통해 사랑학 개론을 다시 써내려 가고자 한다.


그저 사랑만이 아니다. <그해 우리는>이 그랬듯이 세상을 헤쳐나가기에도 바쁜 MZ 세대인 그들, 거기에 저마다 오랫동안 짊어지고 왔던 가족이라는 무게도 만만치 않다. 사랑을 통한 성숙하고 성장한 이들은 자기 삶의 다른 짐 보따리도 이제는 현명하게 풀어갈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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