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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가? 인테리어인가?

- 디 뮤지엄 <취향 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

by 톺아보기

개인적으로 집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이 말은 어패가 있다. 내 집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집 꾸미는 걸 보는 걸 즐겨한다는 것이다. 재력과 능력의 한계로 인해 내 집은 언감생심이지만, 그래도 남의 집 꾸미는 걸 보는 걸 통해 '공간'에 대한 심미안의 취향을 달래보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개취'에 있어 최고의 눈호강을 하고 왔다. 바로 디뮤지엄의 <취향 가옥; ; Art in Life, Life in Art>(이하 취향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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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뮤지엄 <취향 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 © 디뮤지엄

대림 재단의 디뮤지엄 개관 10 주년 기념으로 꾸며진 이 전시회는 독특하다. 디 뮤지엄의 3 개 층을 영상 감독으로 활동하는 20 대 아들, 티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50대 어머니, 자연과 건강에 관심이 많은 30대 부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40대 남성 갤러리스트의 '취향'을 반영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집은 삶의 보물 창고여야 한다


- 르 코르뷔지에




미술관에 지어진 집

우선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50대 여성의 취향을 만나게 된다. 티 소믈리에라는 직업 답게 반투명의 하얀 망사 천으로 사방이 가려진 찻상이 있는 좌식 거실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그 옆 공간으로 가면 매우 모던한 검은 색 소파랄까 의자랄까 싶은 독특한 디자인의 물건(?) 놓여있다. 그리고 그 옆에 세트처럼 검은 색의 조명도 있다. 어떤 공간을 가든 그림들을 걸려있다.

자, 여기서 전시된 작품은 무엇일까?

복도에 걸린 파란 색채의 그림 그림이 김환기였어? (무제 1968, 김환기)하고 다시 보게 된다. 소파 옆에 걸려 있던 키치한 그림들은 일본 작가 타이드와 아츠시 카가의 작품들이다. 오목하게 사람을 담을 것같은 의자는 '유기적인 형태의 유연함과 미니멀한 금속 구조의 엄격함을 결합한 경량성'을 추구한 프랑스 현대 가구 디자인을 대표하는 장 마리 마소의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그 옆의 '코디템인가 했던 조명은 수녀들의 평온함과 고요함을 담은(설명을 보니 정말 수녀님 같았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루이지 카차 도미니오니의 작품이다. 아차차, 복도 한 편에서 작은 건물처럼 존재감을 뽐내던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든 20세기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만든 조명을 그저 지나칠 뻔했다.

이처럼 전시는 가구와 조명, 그리고 그 벽에 걸린 그림들까지 마치 삼위일체처럼 작품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관객을 마중한다. 김환기의 그림과 프랭크 로이드의 조명이 함께 한 취향의 공간이라, 전시회는 이처럼 숨은 보물찾기 처럼 대림 문화재단이 그간 수집해온 가구와 조명, 그림들을 한 공간 안에 어우러져 전시 한다. 이른바 미술관에 세워진 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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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뮤지엄 <취향 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 © 디뮤지엄

그런가 하면 30대 부부의 취향 공간으로 한 층 올라서면 빈티지 의류를 해체해 소파, 의자, 테이블 등에 덧입힌 대런 로마넬리의 소파 위에 그의 아내 캔디스 로마넬리의 꽃 무늬 그릇들이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그 분위기에 맞춰 '로스앤젤레스의 자동차, 도로 위 광고 표지판, 랜드마크 등을 통해 도시의 불균형한 현실을 작품으로 표현한 셰이어 고메즈의 작품들이 벽에 걸려 있다.

테라스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100년 전통의 이탈리아 명품 가구 브랜드 폴트로나 프라우의 설립자 렌조 프라우가 다른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르 포르나세티의 시그니처 캐릭터를 입힌 소파를 만날 수 있다. 전세계 50점을 생산한 제품 중 하나란다.

렌조 프라우의 소파가 있는 거실을 지나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서는 공간에는 피카소의 판화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포트레 이미지네르(1969)> 그런가 하면 방 침대 한 켠에는 20세기 미국 추상 미술가 프랭크 스텔라의 1990년대 제작된 판화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모빌'을 탄생시킨 알렉산더 칼더의 드로잉 판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백남준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는 작은 공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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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뮤지엄 <취향 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 © 디뮤지엄

한 층을 더 올라서면 지금이야 이게 혁신이야 하겠지만 가구에 강철을 접목하는 기술로 20세기 프랑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된 장 프로베의 옷장을 배경으로 덴마크의 '미드 센추리 모던'을 이끈 건축가 핀 율의 '유연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가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 가구들의 공간을 채우는 건 그 이름은 몰라도, 커다란 눈과 생기있는 웃음을 지닌 캐릭터는 친숙한 하비에르 카예하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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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뮤지엄 <취향 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 © 디뮤지엄

전시회는 프랑스, 덴마크, 미국 등의 대표적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층마다 배치하고, 그 작품에 어우러져 파블로 피카소로부터 시작해서 백남준, 김환기, 서세옥 등의 그 내로라하는 명성의 화가들을 비롯하여 가지에 핀 팝콘이라거나 거대한 괴물들의 내러티브를 동화적으로 펼친 구성연, 남진우의 작품들을 조화시킨다.

디자인에 있어 고전이 된 작품들, 거기에 어우러지는 모던하고, 때로는 키치한 그림들의 조화는 대림 문화 재단의 다종다양한 수집품을 전시함에 있어 '취향 가옥'이라는 주제만큼 적절한 게 없다 하겠다. 피카소부터 시작된 많은 그림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전시회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일본 현대 작가들의 현대적 해석이 곁들여진 그림들이다. 물론 우리나라 신예 작가들의 독특한 해석이 곁들여진 추상화도 빼놓을 수 없다.

전시회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라면, 어떤 가구와 조명을 배치하고, 그 곁에 어떤 그림을 배치하고 싶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명품 가구와 명작이 어우러지는 공간, 이보다 더 최고의 인테리어가 있을까.

가구와 어우러지는 그림 가운데 전시회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화룡점정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조명들이다. 앞서 수녀님을 닮은 조명은 물론, 배의 잠만경을 구현한 스페인 산업 디자인의 선구자 안드레 리카드의 조명도, 명품 조명의 대명사가 된 지노 사파티의 모던 버전의 클래식 상들리에도 놓칠 수 없는 재미를 준다. 이처럼 소파면 소파, 조명이면 조명, 때로는 싱크대와 장농에 그곳을 장식하는 고양이 인형까지 그 모든 것이 작품이 되는 공간, 관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즐감'이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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