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는 구직 중 15화>
함께 학원을 다니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서른 다섯 명 쯤 됐었다. 간호 조무사,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중복으로 도전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마흔 명을 훌쩍 넘겼다. 뒤늦게 문제지를 풀어가며 시험 준비를 하며, 혹시나 떨어지면 어쩌지 가슴을 졸였지만 막상 시험을 치른 이들 대부분은 합격증을 받아 들었다. 함께 수업을 들으신 분 중 뇌 신경계 질환으로 인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시험 문제 독해에 어려움을 느끼셨던 분 한 분 만이 고배를 마셨다.
함께 수업을 들은 이들은 30 대에서 부터 70 대 까지 말 그대로 다양한 연령의 남녀노소였다. 우리들 대부분이 합격증을 받아들었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인지'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요양보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60대 이후의 취업률이 높아지고, 그 중 상당수가 '요양보호사'를 선택하기도 한다는 뉴스들을 보면, 나이가 들어서도 접근성이 유리한 직업이라는 뜻 일게다.
하지만 이제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서너 달을 넘기며, 개인적으로 느끼게 되는 건 누구나 요양보호사가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만한 직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 식사 도움 © 목동요양보호사 학원
요양보호사 라는 직업군은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전국에서 매주 수많은 요양보호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막상 주말 상관없이, 낮과 밤 상관없이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 특별한 조건의 이 직업에 종사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누구라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취업의 문을 활짝 열려 있다. 하지만 막상 지내다 보니, 3개월이라는 수습 기간의 문턱을 넘기는 건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얼마 전 70대의 남성 분이 신참으로 들어오셨다. 6년 여 경비 일을 하셨다며 그 시간 동안 징글징글하게 더위와 추위에 시달렸다 하셨다. 그래서 실내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겠다며 장담을 하셨다.
하지만 장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요양보호사 일을 한다면 상대방이 대부분 어르신들 기저귀 가는 일이 어떠냐며 힘들지 않냐며 물어보듯이, 세간에서 요양보호사 일이라면 어르신들 기저귀나 갈아드리고, 밥이나 챙겨드리면 되는 일처럼 여겨진다. 사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루 일과 중 주요한 일이 어르신들 삼시 세끼 챙겨드리고, 틈틈이 기저귀 갈아드리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일 만을 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다. '야전'에서 잔뼈가 굵었다며 장담을 하시던 그 70대 신참 분은 한 달이 지나지도 않아, 생각보다 이 일이 힘들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만 오 천 보가 넘는 동선을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니 '실내'라는 메리트만으로 넘어갈 상황은 아닌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일하는 층이 가로로 길게 펼쳐진 공간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곳이라 해서 여유롭게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 양치 도구 © 홍천 주간보호센터
육체적으로는 생각보다 힘들지만 그래도 집에서 쉬고 나면 할 만 하다며 장담을 하던 그 분의 발목을 잡은 건 요양보호사가 해야 하는 일 자체였다. 기저귀나 가는 그 일을 그 분은 거의 세 달 쯤 되어서야 겨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말까 했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어르신들 중에는 스스로 사용하지 못하시거나, 혹은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젓가락 등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식사 제공 시 어르신들 각각의 상황에 맞춰 식사를 드리는 것들은 말 그대로 기본 중 기본이다.
식사도 다르다. 어르신들의 성함을 외우는 것이 기본인 것처럼, 그 분들에게 어떤 식사를 가져다 드려야 하는 것을 숙지하는 것 역시 기본이다. 치아가 없거나 부실한 분들은 미리 잘라 드려야 하고, 혼자 식사를 못하시는 분들은 '도움'을 해드려야 하기도 한다. 죽이거나, 혹은 죽과 밥이 섞인 죽밥이거나, 당뇨식으로 제공된 잡곡밥이거나 밥의 종류도 다양하다. 거기에 와상 상태로 콧줄(엘튜브)을 끼고 경관식을 하시는 경우에 절차에 맞춰 경관식을 공급하고 약도 드리는 것이 식사 제공에 들어간다.
식사 후에 양치 컵과 물을 제공하고, 그 뒤처리도 빠질 수 없다. 인지 기능이 쇠퇴하신 분들 중에는 양치 컵과 물이 보일 때마다 양치를 계속 몇 번이나 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그걸 어르신 옆에 놔드려 하는 지, 식사 후에만 잠시 가져다 드려야 하는 지도 잘 알아 두어야 한다. 식사 하고 양치를 했다고 마무리가 아니다. 끼니 때마다 챙겨 드셔야 하는 약도 빼놓을 수 없다.
▲ 65세 이상 치매 발병률 © 서울대학교
최근 요양보호사 교육이나 시험에 있어 '치매' 관련 내용이 집중 강화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각종 혈관 질환, 파킨슨 병으로 인해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치매'는 65세가 넘으면 5년마다 2배씩 환자가 늘어나는 병증으로,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환자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치매' 환자라고 해서 늘 이상 증세를 보이지는 않는다. 혹은 '치매' 증상 자체가 보기에 따라 헷갈릴 경우도 많다. 그런데 치매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치매 어르신들을 대할 때 스스로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치매로 인한 증상을 보이시는데 자신의 설득으로 어르신들을 달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장담하다, 결과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외려 답답해 하거나 서운해 하기도 한다. 나의 답답함이나 서운함은 개인적인 문제지만, 때론 한 요양보호사의 미흡한 인식이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 섣불리 넘어갈 수 없는 영역이다.
또한 시간이 흐를 수록 어렵다 느껴지는 일은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신체적 징후 들에 대한 대응이다. 그저 어르신들을 밥 먹이고 기저귀 갈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신체적인 징후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요양보호사의 업무 중 빠뜨릴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똑같이 내 배에서 나온 아이들임에도 아롱이 다롱이 서로 다르고, 그에 맞춰 아이들을 키워가야 하듯이 어르신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열 분이면 열 분, 스무 분이면 스무 분 같은 분들이 한 분도 계시지 않다. 그러니 일괄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요양요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애초에 어불성설이 된다.
수습 기간의 문턱을 넘지 못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저 요양보호사가 해야 하는 아롱이 다롱이한 보살핌을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아롱이 다롱이까지는 언감생심 센시티브한 보살핌의 메뉴얼 자체를 인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는 더더욱 가능하지가 않다.
몇 달 간 경험해 본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꽤나 자기 주도적이어야 하는 직종이다. 요양원의 하루가 물 흐르듯 흘러가기 위해서는, 그 물결 속에서 오리가 쉴 사이 없이 다리를 휘젓듯 요양보호사들의 세심하고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