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가 가벼운 여자~

<60대는 구직중 16화>

by 톺아보기

어르신들 점심 준비로 바쁜 와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를 찾는 전화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어제 119 응급으로 병원에 가셨던 어르신의 보호자.

따지는 듯한 어조로 시작된 보호자의 말인 즉, 어르신이 119에 실려 가셨다는 말에 병원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식은 땀으로 옷이 흠씬 젖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추운 날 왜 젖은 옷도 갈아입히지 않은 채 보냈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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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 © 두손누리

얼마 전 면회에서 따뜻한 생활실에서 지내시던 데로 내려가셨는데, 하필 그날 따라 면회실이 좀 쌀쌀했는지 어르신이 춥다 하셨단다. 그때부터 그 보호자는 혹시라도 제대로 갖춰 입히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셨는데, 응급실에서 만난 어르신의 옷이 젖어 있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보호자의 의심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어르신들이 지내는 생활실은 요양보호사들 대부분이 반팔을 입고 근무를 할 정도의 온도이다. 환절기나 겨울에 어르신들 감기가 요양원에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니,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나면 땀이 뚝뚝 흐를 정도의 온도를 늘 유지하고 있다.

어르신으로 말하자면, 적어도 요양원을 떠날 때까지 어르신의 옷이 젖어 갈아입혀야 될 정도로 옷이 젖어 있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119 구급차로, 다시 병원 응급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갑작스런 기온 변화로 식은 땀이 나지 않으셨을까 싶지만 흥분한 보호자에게 섣불리 그런 예측을 내비칠 수도 없었다. 다만, '보호자님, 어르신 옷이 젖었다면 저희가 왜 갈아입히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어제 입고 가신 젖은 옷은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리고, 따뜻한 조끼도 입혀드렸으니 정 안심이 되지 않으시면 지금이라도 와서 보세요.' 라고 말씀 드릴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억울함을 눈치 채기라도 한 건지, 동료 요양보호사가 농담 삼아 말한다. 그러게 엉덩이가 너무 가벼우면 나만 손해야 ~.

엉덩이가 가벼우면 나만 손해?

그러니까, 저 보호자 전화 '사건'의 시작은 어제 간식 시간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은 층마다 구역을 나누어 각자 맡은 생활실과 어르신들이 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면 담당 구역만을 따지게 되지는 않는다. (물론 담당 구역만 하는 요양보호사들도 있다) 어제의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맡은 건 4구역이었고, 저 어르신은 그 옆 3구역의 어르신이었다. 매달 돌아가며 구역이 바뀌는 터라, 지난 달 3구역을 담당했던 나는 그 쪽 어르신들의 동정에 익숙한 편이었다.

간식을 드리러 갔는데 평소와 다르게 몸을 떨며 춥다 하시는 모습을 보고 조끼도 입혀 드리고, 이불도 잘 덮어 드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추워하시는 게 아니라 오한(몸이 덜덜 떨리는 증상.)이 나시는 거 같았다. 당연히 간호사한테 보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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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 © 케어매치 복지센터

체온 등 바이탈을 재보니 정상 수치가 아니었다. 산소 포화도도 떨어져 부랴부랴 산소 발생기까지 출동했다. 어르신의 이상 상황을 발견하고 보고를 한 건 나였지만 구역 담당도 아니었고, 막상 사태가 발생하자 팀장이 와서 상황을 이끌어 갔고, 내가 한 일이라곤 그 옆에서 보조를 한 것 뿐이었다.

보호자가 왜 발목 시리게 덧버선을 신겼느냐는 볼멘 항의도 따지고 보자면 팀장이 한 일이었다. 갈아 신기는 옆에서 발목 시렵지 않겠냐며 한 마디 거들었다 까다로운 보호자가 사온 거니 신겨야 하는데 뭔 소리냐며 외려 한 소리 듣기만 했다. 콧줄이 답답해 빼버리는 어르신의 손을 잡아 콧줄을 제대로 끼다 어르신이 할퀴는 바람에 손에 멍만 들었다.

한 소리를 듣건 멍이 들건 그래도 다행히 어르신을 제 때 응급실로 모셔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막상 보호자의 저런 항의를 듣고 보니, 맥이 풀렸다. 사실 보호자도 보호자지만, 그 어르신 자체도 보통 분이 아니셨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목욕을 시키거나, 기저귀를 갈 때 맘에 들지 않으면 세상에 저런 욕이 있을까 싶은 욕들을 마구 내뱉으시고, 침을 뱉고, 손톱으로 꼭 눌러 자국을 내거나 할퀴는 건 예사인 분이셨다.

그래도 그저 치매에 걸려 그러시는 거려니 하고 식사 때면 골고루 드실 수 있게 챙겨 드리고, 매번 뱉어 버리는 약을 드실 수 있게 하려고 갈아서 요플레 등에 섞어서 드리고, 보호자가 가져온 육포니, 빼빼로 등 개인 간식도 빠짐없이 챙겨드리려 했었는데 그걸 알아 달라는 건 아니지만, 막상 무조건 느네들이 내 엄마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거 아냐 라는 식으로 나오니 답답했다.

물론 이 해프닝에는 짚어야 할 점이 또 있다. 도대체 그 보호자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인 건 팀장이었고, 모시고 간 건 간호사였는데, 정작 어르신 아프다는 걸 알려준 내가 그 보호자의 '포화'를 맞게 된 그 저간의 '흑막(?)'은 또 뭐였을까 싶은 것이다.

평소 내가 근무하는 모습을 보고 선배나 동료 요양 보호사들은 '엉덩이가 가볍다'고 농반 진반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처음 요양원 일을 시작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이곳 일에 적응하려고 하면서 '솔선수범(?)' 일을 해나가다 보니 그런 소리를 듣게 된 것 같다. 어르신이 부르면 웬만하면 달려 가보려 하고, 해야 할이 보이면 빼지 않고 하다 보니, 어느덧 엉덩이가 가볍다는 소리를 듣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이젠 '엉덩이가 가볍다'고 놀리는 선배, 동료들에게 눈치 보면서 뺀질거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반문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막상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내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어느 선생님 말처럼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느냐고 혹은 누가 내 이름을 누가 알려 줬느냐고 따져물어야 했을까, 아니 애초 평소와 다른 어르신의 바이탈 사인 따위 담당 선생님이 알아서 하겠지 하며 그냥 지나쳐야 했을까.

그날 저녁 그 구역 담당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다. 그 보호자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감기 기운이 있어 면회는 못 오니 자기가 못 오더라도 어머니 좀 잘 부탁 드린다는, 갖은 이모티콘을 더한 장문의 메시지였다고 한다. 선생님 말로는 나를 담당 구역 선생님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메시지를 전달 받고 보니, 저 보호자도 자기 엄마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지레 그런 모습에 우리들이 엄마를 홀대하고 무시하지는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이 역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 온 게 아닐까 싶었다. 해프닝인지, 사고인지, 혹은 누군가의 비겁한 떠맡김인지 모르겠지만,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보호자에게도 적절한 응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내가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저런 사건과 해프닝은 일어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책임을 떠넘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나의 의지로 피해갈 도리는 없다 싶다. 그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 밖에는. 그러니 나는 계속 엉덩이가 가볍게 요양원을 종횡무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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