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는 어떻게 나이들어 가는가? 한때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여배우들, 시간은 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랑을 나누던 여주인공은 이모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그 시간을 늦추고 싶은 게 인지상정아닐까. 그래서인지 '치정 멜로' 분야에서는 그녀들은 여전히 '사랑'과 '복수'의 단골 주인공들이다.
김희애 배우는 <부부의 세계> 등에서 여전히 젊은 전문직 여성으로 '사랑'을 주무른다. 90년대를 주름잡던 고현정 배우가 도무지 나이를 알 수 없는 앳된 모습으로 또 다른 치정 멜로 <너를 닮은 사람>에서 연하의 애인과 남편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주인공으로 분한다. 이들 여배우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산소같은 여자'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이영애 배우가 오랜만에 jtbc의 주말극 <구경이>로 돌아왔다.
하지만 반가운 건 오랜만에 신선한 시도로 돌아온 이영애 배우만이 아니다. '덕후'의 냄새를 풀풀 풍기며 게임에 몰두하는 주인공 구경이와 또 다른 인물 케이(김혜준 분)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실험에 몰두하는 모습을 대비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구경이>는 b급 장르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일찌기 <얼럴뚱땅 흥신소>에서 부터 <너를 기억해>, <추리의 여왕> 등으로 이어지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b급 스릴러가 가지는 엉뚱하고 기발한 캐릭터와 설정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아니나 다를까,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 학생이 자살을 하고, 그 학생과의 관계를 의심받던 남편이 자살을 하는 바람에 경찰직을 내던지고 이제는 간간이 의뢰받는 보험 조사일이나 하며 살아가는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여주인공은 심각함 대신, 빼갈에 티백을 담궈 낸 블랜디 맛을 즐기고, 의심병을 치료한다며 게임에 몰두하는 엉뚱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런 그녀가 후배인 보험조사 팀장 나제희(곽선영 분)의 의뢰를 받아 내려간 통영, 그곳에서 보험 사기 사건을 조사하던 구경이는 자신이 맡은 사건의 당사자가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구경이 말 그대로 '사이즈'가 큰 사건의 시작이었다. 어수룩해 보이지만 예리한 탐정 구경이의 촉 그대로, 그건 통영 바닷가의 한 배에서 있었던 회식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 당사자들의 집단 사망 사건이었고, 그 배후에는 죽어도 싼 사람들을 그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죽이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2회 마지막 장면 드디어 조우한 구경이와 케이, 드라마는 탁월한 감과 수사 능력을 가진 하지만 보기엔 어쩐지 사회부적응자같은 구경이와, '아 ~ 심심해, 사람 죽이고 싶다'를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사이코패스 케이와의 대결을 축으로 한다.
탐정과 사이코패스의 대결, 거기에 <구경이>는 흥미롭지만 모호한 캐릭터들을 포진시켜 드라마적 재미를 더한다. 산속에서 홀로 막걸리잔을 기울이더니, 구경이를 납치해 허름한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수사 의뢰를 하는 용숙, 김혜숙 배우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심상찮은 포스가 넘친다. 살인범을 잡고 싶다는데 어쩐지 <도둑들>의 씹던 껌 분위기를 내는 배우, 과연 그녀의 진심은 무얼까.
그런가 하면 <슬기로운 의사 생활> 에서 준완의 마음을 애태우면서도 엉뚱한 매력을 뽐내던 익순 역할의 곽선영 배우가 맡은 구경이의 후배 나제희 역시 그저 '조력'자기엔 존재감이 만만찮다. 거기에 <D. P>를 통해 대중에게 한 발 다가선 조현철 배우가 맡은 '알기쉬운 자' 경수의 고지식한 어수룩함, <경이로운 소문>의 수혜자 이홍내 배우가 뿜어내는 심상찮음 등, 출연진의 면면 만으로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영애 배우로부터 김혜숙, 곽선영, 조현철, 이홍내 등 이 신선한 조합을 끌어모은 이가 <조작>, <아무도 모른다>의 이정흠 피디이다. <아무다 모른다>를 통해 김서형 배우의 또 다른 매력을 한껏 발산시켰던 이정흠 피디는,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종교와 관계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졌던 전작과는 180도 다른 슬랩스틱조차 마다하지 않는, 거기에 요즘 TV에서는 보기 드문 연극 무대같은 실험적인 연출 장면까지 등장시키며 <구경이>로 돌아왔다.
물론 <구경이>가 시청률마저 담보된 대중적인 스릴러일 거라는 예측은 못하겠다. 하지만 모처럼 제작진의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B급 스릴러의 귀환이란 사실만으로도 반갑다. 부디 순항하여, 떡진 머리 탐정 이영애의 다음 시즌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