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기자였던 프랭크 허버트는 1959년 오리건 주 사막을 '취재'하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대하' sf 소설을 착상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65년부터 <듄>이 세상에 등장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라 하면 <스타워즈>, 엄청난 세계관을 지닌 대하 소설이라 하면 <반지의 제왕>이 떠오른다. <듄>은 이 둘을 합친 듯이 우주 전체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세계관을 통해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일찌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1984년 거대한 시리즈 <듄>을 작품화한 바 있다. 하지만 원작이 가진 방대한 세계관은 제 아무리 시대를 앞서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라 해도 담기엔 역부족이었던 듯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번에는 <콘택트>, <블래이드 러너 2049>를 통해 존재에 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 드니 빌뵈브 감독이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과연 드니 뵐뵈브 감독은 원작의 세계관을 제대로 담아냈을까?
지구와 지구인을 '초라'하게 만들었던 외계의 문물, 그 상징으로 등장했던 <콘택트>의 우주선과 같은 기구들이 <듄>을 채운다. <듄>을 보고 나와 기억을 사로잡는 건 환타지적인 스토리보다 어쩌면 10191년의 우주를 채우는 신비롭고 압도적인 음향과 우주적 공간을 채우는 거대한 물체들 아니었을까. 그렇게 영화는 '신비롭고 압도적인 외계의 미쟝센'을 통해 드뇌 빌뵈브 식 '유니버스'로 보는 이들을 인도한다.
영화의 제목인 '듄'은 아라키스 행성의 모래 언덕을 뜻한다. 하지만 이 모래 언덕은 그저 모래 언덕이 아니다. 21세기의 문명이, 아니 산업혁명 이래 인간의 화려한 문명 자체가 특정 지질층에 매장되어 있는 화석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상징하듯, 영화 속 '듄'에 매장된 환각제 '스파이스'는 우주선을 영도하는 물질로 전 우주가 움직이는데 결정적인 '물질'이다.
'석유'와 '석탄'이라는 지하 자원이 '제국주의'와 '자원민족주의'의 '시발'이 되듯, 아라키스 행성의 스파이스는 행성을 둘러싼 전 우주적 차원에서 '별들의 전쟁', 그 도화선이 된다.
스파이스를 가졌지만 그로 인해 '식민지'가 되고, 피지배자가 되어 자신의 땅에서 쫓기는 신세가 된 사막 민족 프레멘,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우주의 지배자, 황제와 그의 명을 받은 하코넨과 아트레이더스 가문이 '스파이스' 자원 전쟁에 참전한 '종족'들이다.
영화는 10191년이라는 먼 미래를 '상정'하고 있지만, 엄청난 규모의 우주선 들에서 뛰어나온 무리의 군대가 칼을 들고 서로 '쟁투'를 벌이듯, 막상 영화 속 권력 구조는 중세의 왕국이 '현현'한 듯하다. 마치 인간의 역사가 제 아무리 첨단의 문물로 치장을 해도 결국은 땅따먹기와 같은 중세적 혈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 중세의 왕국 중 '물' 걱정없이 풍요로운 부강을 누리고 있던 아트레이더스 가문은 갑작스레 지금까지 아라키스를 지배하던 하코넨 가문을 대신하라는 명을 받는다. 황제의 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레토 아트레이더스 1세는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아라키스로 향하지만 그건 나날이 세력이 커져가던 그를 제압하려던 황제와 하코넨이 결탁한 음모였다.
아라키스 행성에서 아버지 레토 아트레이더스 1세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사막 한 가운데 던져진 폴 아트레이더스, 영화는 그가 적이었던 사막 종족 프레멘과 함께 떠나는 것으로 1부가 마무리된다.
거기에는 끊임없이 폴을 괴롭히다시피 나타나는 그의 영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레토 아트레이더스 1세의 아들인 폴, 하지만 그는 동시에 제국의 중요 지하 세력인 '베게 게네리트' 조직원인 어머니 제시카에 의해 '딸이 아닌 '아들'로 태어난다. 여성에 의해 승계되어 온 조직에서 태어난 아들은 '퀴사즈 해더락'이라는 '메시아'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콘택트>에서 외계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루이스는 지구와 다른 체게의 언어와 '시간'을 경험한다. 상식의 언어, 그 경계를 넘어선 '영적인 언어'를 통해 <듄>은 지배 세력 내에 암약하는 또 하나의 세력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자손으로 태어난 '폴'을 통해 '초인'의 탄생을 예견한다.
즉 과학 기술의 결과물이거나,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부터 온 인물이 아닌, 인간의 또 다른 영역, 무의식을 전면에 등장시키고,, 영적인 능력을 지닌 선지자로서의 '초인' 퀴사즈 해더락의 등장이 서막으로서의 <듄>이다.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예수가 사막으로 가서 고행을 통해 자신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듯, 그저 평범했던 귀족 가문의 아들 폴은 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잃고, 영적 지도자 그룹인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자신이 예견된 '초인'으로 제련되는 과정을 위한 서막이다.
거대한 문명을 앞세운 우주 전쟁, 하지만 결국 아라키스 사막의 스파이스라는 환각 물질을 둘러싼 지배와 피지배를 둘러싼 권력 쟁투, 그 끊이지 않는 지배를 향한 욕망의 악순환 속에서 예정치 않은 퀴사즈 해더락이라는 '초인'이 등장한다. 실제의 권력과, 그 이면의 '영적인 경계',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경계 너머의 무의식, 그런 '혼재'된 세계를 통해 '듀니버스'는 탄생되었다. 과연 그 '초인'은 이 모든 갈등을 종식시킬 메시아일까? <블래이드 러너 2049>를 통해 인간과 문명을 회의했던 드뇌 빌뵈브 감독이 그려낸 '메시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듄 2>가 그 바톤을 이어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