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지 말자
2. 다치지 말자
3. 행복하자
4. 건강하자
5.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말자
첫째 날, 전날까지 작업에 몰두하던 나는 잠결에 어느새 부대 앞에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부대 근처 카페에서 나는 입대 전 작품 후기를 편집자님께 보냈다.
민간인 신분, 아직까지는 군부대 사람들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며 나를 대했다. 곧 그렇지 않게 될 거라는 걸 생각하니 믿기지 않았다. 입영식이 있을 체육관 앞에 편지를 쓰는 장소가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이를 넘겼다. 따로 편지하지 않아도 될만큼 가깝다는 걸 이렇게 느꼈다.
입영식은 생각보다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가장 가쪽에 있던 나를 보기 위해 2층 관중석 가장 앞으로 나왔다. 이때 미국에 있던 큰누나의 영상 통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기 전 전화하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다. 내려오는 순간 부모님을 안아드리지 못한 것도 한이 됐다.
이름이 사라졌다. 8번 훈련병 윤원이 되었다.
첫날부터 분대장님께 칭찬을 받았다. 작은 누나는 수건을 동그랗게 말아 갠다. 호텔이라 생각하면 된다. 새로운 시작이란 마음으로 나 역시 그렇게 갰는데 놀랍게도 이 훈련소 수건 접는 방식과 같았다. 우리 작은 누나의 잔소리가 귀에 울리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어색한 사람들끼리 모인 생활관에서의 첫날 밤은 생각보다 큰 느낌이 나지는 않았다. 이렇게 매일 흘러가기를 빌 뿐이다.
둘째 날, 검정색 전투화를 불출 받았다. 다른 것도 다 받았지만 유난히 전투화를 얘기하는 이유는 신발끈을 묶다가 아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 나이 21살, 신발끈을 묶으면 자꾸 풀려 아빠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아빠가 묶으면 신발끈이 풀리지 않는다. 문득 혼자 신발끈을 묶어보니 스스로도 깔끔하게 전투화를 맨다는 생각에 조금 놀랐다.
아빠가 보고싶다, 아마 봐도 짧고 어색한 머리겠지?
스승의 날이자. 이미 선생님들께 입대 전 뵙고 인사를 드렸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란다.
오늘 불침번을 처음 섰다. 1시간 30분, 11시 30분부터 1시까지 이태껏 배웠던 제식 훈련을 연습했다. 소리가 나면 혼날 수도 있으니 숨죽이고 연습했다. 자고 일어나서는 뭘 했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지나갔다. 부분대장에 임명되기도 했고 소대장님과의 면담도 가졌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나는 한 가지 겁을 먹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나보다 성장해 있고 나는 그대로면 어떡할까.'
소대장님과의 대화 이후에도 이 걱정은 더욱 심화됐다. 나의 가족, 친구, 학생들 모두 내가 따라가기 멀 정도로 성장해 있으면 어떡할까. 군대 와서 처음으로 막막했다. 소대장님께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말하면 해결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셨다. 그와의 대화 이후 나는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이곳에서 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 역시도 나의 스승이 될 것이다.
비가 온다.
아침에 야외에서 총 수여식과 자치근무자 임명식이 진행됐고 쭉 실내 안에 있었다. 비가 오니 작업 때 들었던 이승철의 리메이크 버전인 '비처럼 음악처럼'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는 곳이 훈련소에서는 식당이 유일하다.
다들 사진들을 꺼내 볼 때 나는 까먹고 가져 오지 않아 다른 훈련병들 것을 같이 봤다. 다른 사람의 추억을 함께 추억하자. 지금 이 순간만 할 수 있는 낭만적인 일이다.
사람들이 대화를 트고 분주하다. 다들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고민하던데 이참에 미국에 있는 큰누나에게 보낼까 싶다. 큰누나만 생각하면 참 씁쓸하다. 그래도 나나 누나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 다행이다.
직업이 작가라 그런지 매순간 머릿속에 작품이 떠오른다. 세번째 웹소설부터 드라마 각본 공모전에 낼 멋진 시나리오, 내 첫번째 종이책이 될 원고까지.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한편의 영화가 되어 돌아간다.
작가인 나는 입대 이후 길을 잃었다. 내 작품들도 마치 조타수를 잃은 배와 같이 요동친다. 억지로 억누르면서 상상의 폭발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