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바람개비 흐르는 곳에서

by 윤원

오늘은 전화를 했지만 편지를 많이 썼다. 부모님과 나에게 먼저 쓰고 국어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 한 분께 편지를 썼다. 국어 선생님인 만큼 좋은 구절 하나 없을까. 그러다 문득 1993년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 속 [이탈한 자가 문득]의 한 부분을 써서 보냈다.

'나는 보았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이 얘기를 건넨 이유는 단순히 나는 아직 궤도에 머물러 있고 포기하지 않았으니 이탈하려거든 다시 잡아주라는 뜻이었다.

저녁 점호, 조교 지원자가 있는지 분대장님께서 물었다. 곧장 손을 들었다.

"왜 하고 싶어?"

"리더십을 배우고 싶지만 사회에서 저는 어딜 가나 막대입니다. 군대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꿈인가?"

"아닙니다."

선생님이란 꿈을 안 꿔본 적은 없다. 작가로 시작한 장래희망, 천문학자로 바뀌었고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을 보며 선생님을 꿈꿨다. 문득 그 시절 생각을 하니 내가 꿈을 많이 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 군에서 집으로 보낼 소포에 터질 듯 한가득 들어있었다.


아침 점호에 소대장 훈련병이 되었다. 점심 먹고는 소대장 훈련병을 반납했다. 부대의 소대장 훈련병 자리가 나로 바뀌었지만 도저히 연습할 시간을 못 주겠어서 훈련 때 평가가 좋았던 생활관 동기에게 건네줘야 했다. 아쉽지 않았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인 곳이 군대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부분대장 훈련병에서 결과적으로 분대장 훈련병이 되었다.

부분대장 훈련병-> 소대장 훈련병-> 분대장 훈련병, 아침부터 피곤했다. 지금은 훈련소 분대장 선발 자기 소개서를 쓰고 있다. 입대 전 사회 경력란이 터진다. 작년에 열심히 지냈다. 아니, 그동안 열심히 지낸 모양이겠지.


조교 면접이 있었다. 부지런하게 적었음에도 조교 1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나는 오른쪽 손목이 좋지 않다. 직업적인 면에서의 병이지만 작년 교통사고도 무시할 수 없다. 조교는 신체적 우월성이 필수다. 떨어지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이제 모르겠다. 얌전히 대입을 위한 공부를 해야겠다. 속상하지도 아쉽지도 않다.

PX도 처음 갔다. 가격이 싸다는 것도 알았지만 건강이 우선인 만큼 콜라 한 캔으로 만족했다. 700원, 그 적은 가격에 놀라면서도 캔 음료 하나에 만족하는 내가 신기하게 보였다. 콜라 한 캔에 치킨을 좋아하는 엄마, 늘 한 모금씩 마시던 아빠, 그만 먹으라는 누나들이 떠올랐다. 지나가는 바람에 가족이 있다고 했던가. 나는 콜라 한 캔에서 가족이 보였다.


불침번 때 글을 좀 썼다. 오늘 문득 친구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5월 19일...


바람개비 가득 흐르는 곳,

당신 닮은 신록 뻗치는 나무 하나,

볼 때마다 당신 닮아 푸르고,

그렇기에 물 한 번 더 주려고,

더욱 세세하게 들여다 보나,

문득 맑게 갠 하늘 바라보니,

당신없이 맞이하는 네 번째 봄,

추억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곳,

그곳에서 신록 뻗치는 나무와 마주해,

전화기 너머 웃고 있던 당신 목소리,

들으면서 상상했던 그 얼굴,

나무가 펼치는 잎 하나하나에,

당신의 파릇파릇한 기억 고스란히 하나씩,

나는 바람개비 가득 흐르는 곳,

당신은 그곳의 신록을 뻗치는 나무,

바람 불어 오면 뒤돌아 한 번 더


체력 단련 평가가 있었다. 1.5k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각각 7분 28초, 열외 (손목이 안 좋다), 30개를 했다. 전부 미달이 나왔다. 1생활관 사람들은 서로가 슬슬 편해지는 듯싶었다.

우리는 조용히 잠을 자면서 쉬기도, 책을 읽으면서 쉬기도 했다. 복잡스러운 다른 생활관과 다르게 우리는 약간의 코고는 소리와 책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침상 훈련병은 근례 몸이 안 좋다고 한다. 의무반과 민간병원을 오가면서 걱정이다. 체력 단련 평가 이후 계속 누워서 힘들어 했지만 다른 동기들이 잘 도와줘서 다행이다. 아무래도 우리 생활관 좋은 사람들뿐인 것 같다.


바람이 부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바람은 언제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를 가져다 준다는 그런 미신을 마음 한켠에 갖기 때문이다. 오늘은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날이었고 불침번까지 서는 날이었다.

불침번은 나와 9번, 10번 훈련병 3명이서 서야했다. 그러나 10번 훈련병의 계속되는 컨디션 난조로 불침번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새벽에는 어쨌든 깨어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쉬라고 강제로 눕히고 나왔다. 미안할 게 뭐 있는가. 결국 낮에 자신의 할 일은 다 해서 불침번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늘상하는 말이지만 얼른 낫고 자기 위치로 돌아오는 게 더 좋은 일이고 고마울 따름이고.

어제 둘째 누나에게 편지가 왔다. 다이어트하라고 한다. (다른 얘기도 많았지만 특별한 건 없다.) 다치지 말라는 누나의 편지가 있었는데 오늘 야외 훈련이라 밖에 나왔다. 수류탄 투척 이후 대비 연습을 하던 중 무릎을 굽히다가 '빡!' 소리가 났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고 무릎을 굽힐 수 없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던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속상함, 분노. 그 모든 게 다 몰려왔다. 누나의 편지 내용, 스스로의 약속, 그걸 지키지 못한 내가 싫었다. 일기를 쓰는 지금도 바람이 분다.

나는 바람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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