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밀밀한 하루

by 이십삼

엄마는 요즘 블로그에 빠져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파워블로거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와 오빠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열정이 피어난 사람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는 힘이 넘쳤고, 컴퓨터 화면에 비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어딘가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하지만 그래서 더 간절한 그 모습에 우리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았다.


"밀밀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의 블로그가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모든 글에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식탁에 놓인 반찬 투정에도, 시시콜콜한 이웃과의 다툼 이야기에도, 밀밀이는 늘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을 남겼다. 엄마는 당연히 그 밀밀이가 나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우리 딸 엄마한테 할 말 없어?" 는 질문에 나는 그저 애매하게 웃으며 "엄마,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하고 넘어갔다. 엄마의 기쁨을 굳이 꺾고 싶지 않았다.


한 편, 집 안에는 늘 한기가 흘렀다. 그 한기는 대부분 엄마와 오빠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었고, 오빠는 엄마 말을 잘 듣지 않는 아들이었다. 엄마는 "쟨 도대체 뭘 하는 애야? 맨날 빈둥거리지 말고, 너도 동생처럼 좀 살아봐!" 하고는 나의 칭찬 가득한 문장들을 오빠에게 늘어놓으며 비교하곤 했다. 오빠는 늘 엄마의 잔소리를 외면했고, 엄마는 오빠의 무뚝뚝한 뒷모습에 매번 상처를 받았다. 오빠는 늘 혼자였다. 말수가 적고, 어떤 감정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가끔 내가 말을 걸면, 건성으로 "응" 하거나, 아니면 한참 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오빠를 보는 것은, 어쩐지 언제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엄마와 오빠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졌다. 나는 그 사이에서 조율자의 역할을 자처했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그들을 지켜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언젠가 오빠가 평소와 다름없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다음 날이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유난히 더 거세었던 아침이었고, 오빠는 그날도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너무나도 덤덤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전해진 말은, 우리 가족의 시간과 공간을 한순간에 산산조각 냈다. 오빠가, 우리 오빠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소식이었다. 찰나였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그저 "아니야, 그럴 리 없어."를 반복하며 오열했고,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무너졌다. 나는 아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오빠가 누워 있는 차가운 방을, 이제 영영 주인을 잃어버린 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차갑게만 느껴졌던 오빠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사실이, 그저 꿈 같았다.


오빠의 방은 그대로였다. 먼지조차 치울 수 없는 슬픔이 방안에 가득했다. 며칠을 먹지도 자지도 못하던 엄마는, 어느 날 새벽, 마치 홀린 듯 오빠의 방으로 향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아들의 흔적을 더듬었다. 차가워진 아들의 온기를 찾으려는 듯, 덮개도 없는 책상 서랍을 열고, 오래된 책장 사이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때,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낡은 노트가 엄마의 손에 잡혔다. 겉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쳤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낯설게 다가왔다. 그리고 맨 처음 페이지에서, 펜으로 힘주어 적힌 문장들이 엄마의 시선을 붙잡았다.


「...엄마가 요즘 블로그를 시작했다. 어색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뒷모습이 한편으론 가여웠다. 말은 거칠게 해도,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걸 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매일 엄마 블로그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았다. 내 글이 엄마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했다. 닉네임은 뭐로 할까 하다가, 어릴 적 엄마가 나랑 동생을 '밀밀이'라고 불렀던 게 생각났다. 우리가 밉다고 하면서도, 칭찬할 때 가끔 그렇게 불렀다. 그걸로 하면, 엄마가 조금은 웃지 않을까.」


엄마의 손에서 노트가 스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들아, 아들아..." 울음소리는 이미 목구멍을 넘어선 듯, 고통으로 일그러진 비명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엄마가 그토록 칭찬하고 애정했던 ‘밀밀이’는, 늘 내 딸과 비교하며 말을 듣지 않는다 타박했던 바로 그 아들이었다. 엄마의 글에 가장 먼저 달려와 따뜻한 말을 건네고, 엄마를 세상의 가장 행복한 블로거로 만들어주었던 건, 늘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조용하고 무뚝뚝했던 아들이었다.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사랑받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애정을 갈구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마를 밀밀하게 위로하고 있었다.


창밖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세상은 오빠가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똑같이 흘러갔다. 이제 엄마의 손에는 그 낡은 노트와 함께, 뒤늦은 깨달음의 아픔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새겨졌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몰랐다. 너무도 쉽고 가볍게 서로를 판단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남겨진 것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빈자리만큼의 크고 아련한 후회였다. 아들의 마지막 사랑이 담긴 그 노트는, 그렇게 엄마의 밀밀한 하루를 영원히 덮어버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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