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큰 누나가 있다. 이름 앞에 늘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유난히 몸집이 아담한 사람. 다른 친구들의 누나들처럼 훤칠한 키도, 당찬 표정도 아니었다. 언제나 작은 어깨는 금방이라도 지쳐 보였고, 부서질 듯 가는 손목은 내가 함부로 잡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언젠가 나는 누나에게 투정처럼 묻기도 했다. "누나는 왜 그렇게 작아?" 그러면 누나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그 작은 몸 안에 세상의 어떤 무게도 감당할 수 있는 거대한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누나는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았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 사범대에 갈까, 아니면 영어를 좋아해 영문과에 갈까. 그런 낭만적인 고민이 허락되던 시간은 찰나였다. 아빠의 어깨가 조금씩 짓눌려가던 그 해, 누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은행 취직을 택했다. 창구에 앉아 수없이 많은 서류와 마주해야 할 은행원이 되었다.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고 캠퍼스 잔디밭을 거닐어야 할 스무 살의 누나는, 이제 회색빛 빌딩 안에서 숫자를 세고 고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노는 것을 그토록 좋아하던 누나가, 이제는 쉬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졸던 모습. 그리고 어느 날 밤, 방에서 펑펑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다음 날이면 퉁퉁 부은 눈으로 꿋꿋이 출근하던 그녀의 작은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나가 감내해야 했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은행원이 된 누나의 환한 미소 한편에는, 어쩐지 미처 피워보지 못한 학창 시절의 아쉬움 같은 것이 서려 있는 듯 늘 쓸쓸해 보였다. 아마도 누나는 대학에 가서 친구들과 신나게 웃고 떠들며 청춘을 만끽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어설프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세상의 돈맛을 보고 나서야, 나는 누나의 그 작은 손이 벌어다 준 돈의 무게를 실감했다. 겨우 용돈의 반도 되지 않는 돈을 손에 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하는지. 누나는 그 버거운 시간을, 단 한 번의 투정 없이 묵묵히 감내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가난 때문에 구부러진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친 부모님의 손을 잡고 따뜻한 곳으로 이끌었다. "엄마, 아빠. 여기 호텔 좋아? 다음엔 더 좋은 데로 가자."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용돈 봉투를 내밀고, 맛있는 오마카세 예약까지 도맡아 했다. 마치 자신이 부모님의 희망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듯, 그녀는 그렇게 끊임없이 사랑을 쏟아부었다.
어느 날 아빠의 오랜 꿈이 무너져 내렸다. 집안 전체가 절망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쉴 수 없을 때, 누나는 가장 먼저 일어섰다. "아빠, 걱정 마. 나 결혼하려고 모아둔 돈 있잖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몇 년을 땀 흘려 모았을 결혼 자금을 망설임 없이 내어주었다. 아빠는 그저 고개 숙여, 작고도 큰 딸의 어깨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자신의 미래를 기꺼이 담보로 아빠의 마지막 꿈을 지지해 준, 그녀의 마음은 어떤 거대한 산보다도 높고 넓었다.
여전히 누나는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지만,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크게 보인다. 그녀의 작은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큰 산처럼 든든하고, 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위로는 세상의 어떤 고통도 녹여버릴 듯 따뜻하다.
그녀는 영원히 ‘작지만 큰’
참 예쁜 우리 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