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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밑천

나는 장녀다....

by 불곰 엄마

난 장녀다....

집안에 남동생과 나....

예전에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말해왔다.

내가 이제 오십이니... 그 시절도 딸은 집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왔는지.

다른 집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 집이 그런 집이었다.

어릴 적에도 어린 나이의 내가 감당하기 좀 버거웠는데 커서도 어깨의 짐을 항상 얹고 살아온 것 같다

물론 부모님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셨지만, 어린 나는 매번 동생들을 챙겨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고 없는 살림을 엄마랑 같이 걱정해 가며 살아왔기 때문에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하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뭐 이렇게 저렇게 어영부영 지금까지 장녀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설에도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휴양림으로 며칠 쉬려고 가는데 형편이 그리 좋지 않은 남동생네 집도 어차피 명절에 엄마를 봐야 하기 때문에 옆 방을 하나 더 구해서 남동생네는 1박 우리는 2박을 잡았다

울 엄마는 음식을 잘 못 하신다. 근데 명절 음식 몇 가지만 하려고 해도 한 달 전부터 신경 쓰여 드러눕는 분이라. 가급적 음식 준비는 내가 하거나 외식으로 끝낸다.

내가 이혼 한 다음부터는 울 집에서 행사를 치른다.

올케도 음식을 잘하지 못하고 또 어린아이 키우느라 힘들 텐데 그런 걸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다 한다.

그래서 서로서로 마음 편하자고 가까운데 여행을 한 번씩 명절에 간다. 남동생네는 당일치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편의를 봐준다. 어차피 명절에 부모님을 봐야 하긴 하니까.

이럴 때 장녀가 빛을 발하게 된다.

모든 계획부터 준비할 것들 그리고 돈....... 거의 내가 혼자 다 한다.

참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엄마와 동생네 가족 우리 가족 이렇게 전부 챙겨서 떠나고 먹이고...

휴... 효도라 생각하고 좀 힘들어도 열심히 장녀 노릇을 했다

그리고 경비를 많이 쓰기 때문에 용돈은 많이 못 드렸다. 그래도 돈 좀 적게 받아도 자식들이랑 손주들이랑 여행 가는 게 훨씬 즐거우실 거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신경 쓰이고 힘들어도 다녔다.

이번 휴양림도 2박을 하면서 시끌벅적 웃고 떠들고 재미나게 놀고 마지막에 짐을 싸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짐 정리를 하고 쓴 금액을 정리하니... 꽤 많이 썼다... 우선 방 2개를 잡았고 거기서 먹을 음식부터 중간중간 간식비 기름값 엄마 용돈... 이렇게 정리하니 회사에서 받은 작은 떡값을 훌쩍 넘어버렸다... 거의 떡값의 두 배를 썼네... 이런....

음.... 담부터 좀 신중해야겠다... 가계부 빵구 났네 그려.....

며칠 뒤 엄마 모시고 교회를 가는데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다

‘엄마! 엄마는 놀러 가는 게 좋아?? 아님 돈으로 더 받는 게 좋아?? “라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돈!! “이라고 대답하셨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우씨... 난 뭐 한 거지?? 차라리 돈으로 더 드리면 힘들게 뭐 준비하지도 않고 며칠씩 신경 쓰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집에서 푹 쉴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기는 건데...

그동안 난 왜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결정한 거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딸이 할머니 얘기 듣자마자 ’ 엄마 할머니 망설임도 없으셔!!‘ 하며 엄마랑 딸이랑 웃었다.

그래서 내가 얘기했다 ’ 진작에 얘기해 주지 난 엄마가 가족하고 가는 걸 더 좋아할 줄 알고 그랬잖아!!‘ 씩씩거리면서 내가 막 따지듯이 얘기하니까 우리 엄마는 ’ 네가 언제 물어봤냐? 난 네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지~‘

둘 다 어이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럼 다음 명절부터는 다 필요 없이 돈이다!!


장녀라서 무조건 나서서 일을 해야 하는 줄 알고 그렇게 했는데 누구도 원하지 않는 오지랖으로 나 자신을 피곤하게 한 건 아니었는지....

장녀란 굴레를 나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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