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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년 Jun 17. 2024

치료를 못해준다고여?

[이게 응급이 아니면 뭐가 응급이죠?]

팔이 으스러졌지만 응급실에서 간단한 응급조치만 받았습니다. 집이 멀어 대리운전을 불러 집 근처에 가기로 했습니다. 휴일이라 차가 막히지만 몇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진통제가 떨어져 통증이 계속 느껴졌습니다. 수술을 하면 움직일 수 없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최소 2주는 입원해야 하는 상태라 아무도 없는 집과 멀리 있는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는 걸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평소처럼 쉽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움직일 때 팔에서 조각난 뼈가 굴러다니는 느낌과 두둑두둑 소리와 정신이 희미해지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대퇴골이식이라니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어요. 나를 더 자책하게 합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집에 오는 길에 너무 아파서 집 근처 대학병원에 바로 갔습니다.


응급상황이라 생각했는데 의사가 없다고 수술을 해 줄 수 없다는 걸 동의해야 응급실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했습니다. 얼굴, 팔, 다리가 다 바닥에 쓸리고 팔이 으스러져 부목을 겨우 차고 서있는 사람은 응급환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배 나온 중년의 의사는 돌아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수술이 밀려서 수술을 해줄 수 없다 응급환자가 아니면 바로 조치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권위적이고 고압적임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팔이 으스러진 것이 응급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뼈가 부러져 살을 뚫고 외부로 나와야 응급이라고 합니다. 개방형 골절은 감염 위험이 크고 골수염이나 심각하면 패혈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근육, 인대, 신경, 혈관이 크게 손상되고 합병증이 높아져요. 무엇보다 수술을 하더라도 균에 감염되면 손과 발을 절단해야 할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나 도로에는 균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엄청 심각하죠.

주위를 둘러보니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은 응급실에 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병원에 정말 많이 옵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의료비와 높은 접근성 그리고 보험사 실비청구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이미 의료 환경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의사들의 파업과 진료거부로 일상진료가 마비되었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고 팔은 점점 더 부었습니다. 우선 집으로 가면서 다시 119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입원 및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문자로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줬지만 살고 있는 지역의 큰 병원은 없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응급실은 있지만 받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옆 동네의 준종합병원 응급실로 왔습니다.
그곳에는 은퇴를 해야 할 것 같은 60대가 넘어 보이는 꼬장꼬장한 의사가 무슨 일로 왔는지 퉁명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상황을 설명하니 왜 맨몸으로 왔냐며 엑스레이를 찍고 오라 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걸어가다 비틀댔습니다.  쓰러질 것 같지만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나니 바로 입원시켜 줬습니다. 애매하게 주말이 낀 날이라 수술을 바로 하지 못했습니다. 팔이 평소의 2배 이상 부었고 통증과 불편함에 잠을 못 잤습니다. 그래도 받아주는 병원이 있다는 점에 감사했습니다. 이곳도 환자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병실에 자리가 없어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의사 파업이 아니라면 대형병원이 모두 블랙홀처럼 환자를 빨아들여 평소에는 이런 준종합병원은 살아나기 힘듭니다. 지금의 의료는 문제가 너무 복잡해 손대기 쉽지 않습니다. 첫 단추가 전 국민으로부터 의료비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걷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쳐보니 지금 환자들이 얼마나 불편하고 생명이 위험하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신체적 손상을 받는 상황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었거나 심정지 상태였다면 저는 이렇게 글을 쓰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적절히 치료를 받아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요. 119 구급대 시스템 정말 잘되어 있습니다. 근데 병원에서 받아주지 못합니다.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실제 병원에는 진료가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환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10년 뒤에 지금보다 늘어날 1509명의 의사 때문에 지금 수십만 명의 환자들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어느 나라도 의사가 많아서 환자가 죽지 않습니다. 제가 수술을 받지 못한 이유? 의사가 부족해서라고 합니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의료파업 때문에 의사가 부족해서라는 정확한 용어로 말했습니다. 의사가 부족해서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겁니다. 환자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환자에 차질이 없다는 말도 의료 공백이 없다는 말도 큰 수술을 받을 정도로 경험해 보니 믿을 수 없습니다. 운 좋게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하더라도 수술은 또 산 넘어 산입니다. 급하지 않은 수술들만 연기한다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급하지 않은 수술은 없습니다. 진료와 수술을 미뤄도 당분간 괜찮을 환자도 의사가 판단합니다. 지금 진료와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도 길면 6개월을 기다렸습니다. 다치면 큰 일 나는 사회,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는 붕괴되고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살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P.S. 을의 서러움. 평소에도 을인데 다치면 더 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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