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한 달 차 신입사원 지현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직장에 떠도는 괴담쯤으로 여겼다.
점심시간, 여직원들이 탕비실에서 모여 떠들던 자리였다.
“작년에 퇴사한 수진 대리 알지?”
“그 조용하던 분?”
“응. 사실 그냥 퇴사한 게 아니라… 서 팀장님한테 매일 모욕당하고, 팀 안에서도 따돌림 당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대.”
모두가 목소리를 낮췄다.
“마지막에 들른 게 12층 여자 화장실이었대. 그날 야근 청소하던 아줌마가 칸막이 안에서 울음소리를 들었거든. 문 두드리면서 괜찮냐고 물었더니… 수진 대리가 대답했대. 괜찮아요.”
잠시 침묵. 한참 후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그리고 집에 가서, 그날 밤… 목을 매달았대.”
순간, 웃음 섞였던 공기 속에서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지현은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그 이야기가 귓가에 오래 남았다.
며칠 뒤, 또다시 야근이었다.
사무실은 이미 불이 꺼지고 서버 팬 소리만 웅웅 울렸다. 새벽 한 시. 보고서를 정리하고 일어선 지현은 목덜미가 뻣뻣했고, 배 속이 묵직하게 아팠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문득 옆자리 서랍에 아직 치워지지 않은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수진이라고 쓰인 이름표 조각.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채 붙어 있었다.11층 화장실은 잠겨 있었다. 결국 지현은 12층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머뭇거릴 때마다 점심시간에 들었던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괜찮아요”라고 했던 수진 대리.
철컥, 문이 열리자 곰팡이 냄새가 밀려왔다.형광등이 깜빡이며 불안정하게 빛을 흘렸다. 타일 벽은 오래된 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바닥엔 젖은 휴지가 널려 있었다.
그때였다. 안쪽 칸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현은 얼어붙었다. 여자의 울음소리. 목구멍 깊숙이 눌러뒀다가 터져 나온, 억눌린 흐느낌.
“괜찮으세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잠시 정적.
그리고 낮고 떨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네, 괜찮아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현은 칸막이 밑을 살폈다. 텅 비어 있었다. 발자국 하나 없었다. 손 씻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센서가 반응해 차가운 물이 손가락을 적셨다. 현실감이 조금 돌아오려던 순간... 옆 칸에서 휴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바닥에 툭 떨어지는 흰 조각.
지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조각은 자신이 방금 건넨 휴지였다.
아무도 없는 칸에서 똑같이, 동시에. 거울을 보는 순간, 피가 얼어붙었다. 거울 속에는 분명 지현 혼자여야 했다. 그런데 어깨 너머로 뭔가가 스쳐갔다. 머리칼이 축축하게 흘러내리고, 번진 눈가가 비쳤다. 입술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네, 괜찮아요.”
귓가에서 속삭임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단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높은 수십 겹의 음성이 겹쳐, 귀 속을 긁어낸 듯 울렸다.
거울 속 여자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지현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 안 괜찮아!! 안 괜찮아!! 안 괜찮다고....!!!"
그건 지현의 목에서 흘러나왔지만, 목소리는 수진의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지현은 출근하지 않았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제출하지 못한 보고서와, 젖은 머리카락 한 움큼이 놓여 있었다.
옆에 구겨진 휴지 조각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 목소리, 나만 들은 게 아니었지?”
직원들은 술렁였다. 누군가 낮게 말했다.
“수진 대리도… 그날 마지막으로 화장실에서 울다가, 청소 아줌마가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대답했대. 괜찮아요. 그리고 집에 가서…”
말끝은 흐려졌지만,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12층 여자 화장실 쪽에서 희미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아주 짧고 낮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괜찮아요. 지금 네 뒤에서 똑같이 속삭이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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