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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 귀신

by 달빛소년

한여름 새벽, 영훈은 야근을 마치고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자 축축한 강바람이 밀려들었다. 라디오에선 무심한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억지로 깜빡이며 정신을 붙들었다.


‘이러다 졸면 큰일 나겠지.’


그는 창문을 더 내려 바람을 세게 맞았다. 하지만 그 바람은 오히려 기억을 불러왔다. 며칠 전 카페에서 여자친구가 했던 말.


“자유로 귀신 들어봤어? 창문 옆에서 여자가 따라온대. 선글라스 쓰고, 달리는 차랑 같은 속도로. 특히 새벽에 잘 나온다더라.”


자유로 귀신.png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던진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여자친구는 잠시 빨대를 입에 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있잖아… 그 귀신 원래 정체가 아이돌 준비하던 연습생이래. 소속사 사장이 그… 몹쓸 짓을 하려다가 애가 끝까지 저항했는데, 실수로 죽은 거지. 그걸 덮으려고 한강에 버렸다는 얘기가 있어. 아직도 억울해서 못 떠난 거래.”


그녀는 잠시 주변을 살피고 낮게 덧붙였다.


“그래서 혼자 달리는 남자 차에만 붙는대. 특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사람한테.”


영훈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여자친구는 원래 이런 괴담을 좋아했지만, 그는 결혼 준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숨기는 게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그날 따라 유난히 귀에 오래 남았다.


“믿든 말든, 생각만 해도 서늘하지 않아?”


처음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현실처럼 파고들었다.

네비게이션 화면이 깜빡이며 신호가 끊겼다.


“뭐야….”


영훈은 핸들을 꽉 잡은 채 조수석 창문을 흘끗 봤다. 순간 스치는 그림자. 흔들린 나무라고 믿으려 했지만, 긴 머리칼과 창백한 얼굴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차와 같은 속도로 창문 옆에 붙어 있었다.


“씨….”


영훈은 창문을 급히 올렸다. 식은땀이 손바닥에 배어들었다. ‘착각이야. 너무 피곤해서 그래. 내가 헛것을 본 거야….’ 그는 스스로를 달래며 백미러를 확인했다.


그러나 도로 한가운데, 그녀가 서 있었다. 아무런 빛도 없는 자유로 위에서, 고개를 미묘하게 기울인 채.


‘아니야. 저건 그냥 표지판이겠지. 표지판….’


그는 스스로 되뇌었지만, 손끝은 이미 핸들을 파고들 만큼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핸들이 미묘하게 미끄러지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움켜쥐었지만, 손아귀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악셀을 힘껏 밟았다. 시속 120. 그러나 사이드미러 속 여자는 여전히 창문 옆에 있었다. 이번엔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태워줘. 춥잖아. 태워줘….”


라디오가 지직거리며 끊어졌다. 수십 겹의 목소리가 차 안을 파고들었다.


“…태워줘… 태워줘… 태워줘….”


영훈은 손을 떨며 라디오를 껐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가까워졌다.


“…태워줘…”


고개를 돌렸을 때, 조수석 시트는 이미 젖어 있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그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젖은 머리칼이 무릎 위로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선글라스 너머에는,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이건 꿈이다. 꿈이야. 깨어나야 해….’


영훈은 숨을 몰아쉬었지만, 차 안 공기는 얼어붙어 폐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무릎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번져가는 걸 똑똑히 느끼며, 그는 입술을 달달 떨었다.


다음 날 아침, 자유로 갓길에 멈춘 차량이 발견됐다. 엔진은 여전히 켜져 있었지만,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조수석에는 젖은 머리카락 한 움큼이 놓여 있었다.


사건은 기사화되었다.


[사회] 코인 투자 실패 가능성…자유로 갓길에서 30대 남성 실종


오늘 새벽 3시경, 자유로 갓길에 세워진 차량이 발견됐다. 운전자는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경찰은 차량 내 기록과 주변 정황으로 미뤄볼 때 최근 가상화폐 투자 손실로 인한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가상화폐 시세 그래프가 켜져 있었으며, 메모지에는 “버티지 못했다”라는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경찰은 운전자의 최근 금융거래 내역과 심리 상태 등을 추가 조사할 방침이다.


회사 동료들은 고개를 저었다.


“영훈 씨 요즘 계속 힘들다고 했잖아. 손실 얘기도 자주 했고…. 결혼할 여자친구한테도 말 못했다고 하던데. 혹시 그게 원인이 아닐까.”


그러나 커뮤니티에는 다른 이야기가 올라왔다.


- 밤차탄사람 (추천 12 / 비추천 1): 기사에 나온 메모 사진 봤냐? 글씨가 원래 필체랑 완전 다르던데.

- 강서구토박이 (추천 8 / 비추천 0): 자유로 귀신 괴담 알지? 창문 옆에 선글라스 낀 여자 따라온다는 얘기. 이번 사건도 그 구간이야.

- 퇴근길유령 (추천 20 / 비추천 3): 경찰은 코인 탓으로 몰지만, 왜 차 안에 젖은 머리카락 얘기는 기사에 안 쓰는 거냐?

- 차박매니아 (추천 15 / 비추천 0): 나도 어제 새벽 자유로 달렸는데, 사이드미러에 누가 붙어 있는 것 같아서 기절할 뻔 했다. 진짜다.


며칠 후, 또 다른 새벽. 또 한 대의 차가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자는 기사 생각이 났다.


“코인 실패로 죽은 거래….”


혼잣말하며 한숨을 쉬었지만, 사이드미러에 뭔가 스쳐갔다.

창백한 얼굴이 창문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선글라스 뒤로는 텅 빈 눈구멍이 번쩍였다.

운전자는 창문을 닫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시트 등받이가 서서히 젖어들고 있었다. 차가운 물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며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의 손등 위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잠시 얼어붙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도, 물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귓가에서 낮게 속삭임이 들려왔다.


“…괜찮아. 네 옆자리도 비었잖아? 내가 채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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