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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년 Oct 22. 2022

감정을 통제하는 사회 : 네이버 편

네이버 뉴스의 감정표현 변경 

* 이 글은 타 플랫폼에 5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이후 감정표현이 변경되고 나타난 결과에 대한 후속 글도 작성할 예정입니다.


감정을 통제하는 영화


이퀄리브리엄 이라는 영화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리브리아'라는 세계에서 독재자의 통치하에, 전 국민들이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에 의해 통제되고, 정기적으로 투약함으로서 온 국민들은 사랑, 증오, 분노 등의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 나라의 특수요원들은 '프로지움'의 투약을 거부하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는 반역자들을 제거한다.


주인공인 '존 프레스턴'은 정부 최고의 요원으로 정부의 신뢰를 받지만 동료의 자살, 아내의 숙청 등으로 괴로움을 느끼고 '프로지움'투약을 중단하며 통제됐던 감정을 경험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줄거리는 소개하지 않겠지만 유발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I live, I breathe, I feel.
살아있고, 숨 쉬며, 감정을 느낀다고.


이퀄리브리엄 포스터


우리 사회에서도 감정을 통제한다고?


나는 매일 뉴스를 읽지만 요즘 네이버 뉴스를 보며 달라진 점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사에 있던 감정 표현의 스티커가 모두 기사를 칭찬하는 버튼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이다.


기사를 읽는 독자들의 반응으로 좋은 기사들을 발굴하려던 네이버의 의지와 다르게, 기사를 읽고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억압하고 억제해버린 것이다. 빅테크라고 사람의 감정 표현까지 제한하고, 불만 있으어도 표출하지 말라는 것 인지 독자들의 집단 지성과 반응을 쉽게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또한, 감정 표현이 사라지고 언론사나 기자들이 예전보다는 기사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매일 읽는 나로써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내릴 수 밖에 없다.



바뀐 스티커 - 네이버


사라진 감정 표현으로 댓글이 더 격해진 것은 아닐까?



이제 감정 표현하는 스티커가 없으니 독자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써야한다. 예전에는 화나요 를 클릭하여 감정을 표출하고  지나갈 수 있던 것을 댓글로 욕하면서 표출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댓글은 소수의 팬덤이 형성하는 것이지만 대중들은 기사를 읽고 조용히 화나요를 누르면서 분노를 절제하여 표현한다.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의 뉴스 댓글은 건전한 토론과 비판, 격려,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집단 지성 등 뉴스에 참여하여 바람직한 모습을 찾기보다는 기사에 대한 감정의 분출구로 활용되어 왔으며 부작용이 더 크다. 대중들의 사회 참여 욕구를 줄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인신공격과 사이버 테러, 소수의 일방적인 주장의 반복이 상식을 뒤엎는 여론 조작, 좌표 찍기 등으로 선거에도 이용될 만큼 도를 넘어 섰다. 연예 뉴스에도 외모나 사생활에 대한 악플로 연예인, 인플루언서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원인도 악플이 되었다. 


네이버는 결국 노출되는 뉴스를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이전과 다르게 댓글 정책을 언론사가 결정하게 하고 언론사별로 구독한 기사들만 볼 수 있게 변경하였고 부정적인 콘텐츠가 독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정책을 실행했고 댓글도 최신순으로 보이게 바꿔서, 원하면 댓글 노출 여부를 공감순이나 최신순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좋은 감정을 강요하는건 옳지 않다. 



위의 사례는 기사의 폐해 일 뿐이며 감정 표현을 없애는 것은 갈등을 받아 들이는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한 언론사의 기능을 통제하는 것이다. 저널은 정보전달, 여론형성, 의제설정, 환경감시, 오락제공의 5대 기능을 충족해야 한다.

왜 하필 영화의 약물처럼 좋은 감정만 느끼라고 강요하는 방법 밖에 없을까? 인터넷 찌라시도 기사화 되는 마당에 유익한 정보만 얻어가며 뉴스를 건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감정의 통제는 건강한 비판마저 막는 행위이며, 흥미와 가십거리를 가지고 쉽게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죄책감을 덜어 줄 것이다.


세상은 결코 달달하지 않고 어린이집 , 유치원 처럼 밝지 않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공동선, 불평등에 대한 방향과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는 곳이며 토론의 장이다. 다소 냉소적일 지라도 진지한 토론도 필요하고, 부당함에 대해서 화가나거나 안타까운 사연에는 슬퍼할 권리가 있다. 그 와중에 거친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뉴스는 페이스 북이나 인스타처럼 '좋아요'만 클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세상의 모든 일을 뉴스로 접하는 나에게는 즐거운 감정의 강요는 억울하다. 차라리 댓글을 관리하는 네이버 안에서 직원을 고용하여 토론 퀄리티와 관리가 안된다면 댓글 기능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했더라면 어떨까?


네이버는 지속적으로 비판은 줄이려고 언론사에게 관리를 맡기거나 독자들의 표현에 제약을 두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저널리즘이 통제된다면 우리 사회는 또 또란 독재의 영역으로 넘어가 민주주의를 파괴할 지도 모른다. 


빅테크의 성장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프로지움(감정통제 약물)을 알게 모르게 주입 받고, 신경을 끄라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즐거운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며, 기억하고 싶은 사건에 사람들의 참여가 줄어든다면 금방 잊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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