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너, 참 애썼다.

by Seriel J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한 적이 언제였던가?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도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도 심적 여유가 받쳐줘야 챙겨들을 수 있는 하나의 의식이 아닐까?
매해 무탈하고 무던히만 지나가길 바란다며 기도의 단골 문구로 등극해 놓았다.
인생에 있어 큰 시험을 놓지 못해 활자 속에 갇혀 지낸 나의 새해는 늘 그러했다.
차가운 교실의 온도 속 식어빠진 나무 책상 위 교사의 명함을 내려놓던 그날, 나는 공무원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날의 나는 어떻게 해서든 끊임없이 하염없이 누구보다 더 높은 곳으로, 제일 빛나는 곳으로 올라가고자 부단히 애쓰고 달렸다.
참 우습다. 꿈만 꾸었을 뿐인데 마치 합격이라도 한 사람처럼, 적어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크고 무거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거만하고 오만해진 방자꼴이라니...
계속되는 쓰디쓴 낙방의 맛을 느끼기도 전에 현실의 벽은 나를 치기 시작했다.
매일 즐거운 공상으로 재미있는 하루를 열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내가 본 나는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명절길 꽉 막힌 고속도로나 예민의 남극 북극을 찍고 온
미친 여자 같았다. 참고로 살도 좀 쪘다. 꽤 많이.
상상이 되는가? 살찌고, 예민의 남극북극, 귀향길 꽉 막힌 고속도로의 미친 여자... 상상해 보니 웃긴다.
전진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예전의 나를 되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 사람을 사랑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 스스로 미움과 분노라는 형무소에 구형 중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석방시켜 주었다.
불교에서는 번뇌라고 일컫는 부정의 소용돌이를 빼고
온전하고 완전한 나를 찾고 내가 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뭘 하면 좋아죽겠는지, 춤추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뭔지 찾아야 했다.
치열했다.
너울너울 넘쳐나는 생각의 강에서 용케도 살아내다니.
이런들 저런들 어떠한가. 적절한 해답을 찾았으니.
올해부터는 '나'라는 페이지에 그 해답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간다.

_새로 빚다:인정욕구
인정욕구란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 가치 따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일컫는다. 내 주변에도 인정 욕구가 높은 사람들이 몇몇 존재한다.
살찌고+예민의 남극북극+귀향길 꽉 막힌 고속도로의 미친 여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쩌면 공무원이라는 꿈을 품은 것도 인정욕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마시라. 타인의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시라 감히 소리 높여 말해본다.
안타깝지 않은가?
한 번만 살다가는 나의 인생이
타인의 뭣 같은 기준에 부합하여 재평가된다 생각하면 입에서 육두문자가 자유분방하게 나온다.
칭찬이 가스라이팅의 하나라는 글귀를 본 적 있다.
적지 않게 동의하는 바이다. 칭찬을 들음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도파민은 또다시 그 사람에게 칭찬을 듣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나를 위한 인생인지 타인의 칭찬을 위한 인생인지 모호해지는 구간이 온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자와 비슷한 영역의 사람이라면 '칭찬 가스라이팅'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벗어나시라.
타인의 인정욕구에서 터지는 도파민이 아닌,
그 도파민, 나 자신의 인정욕구에서 터뜨려보시라.
지켜줘. 독자들의 도파민.

무쇠. 참 애썼다.
계속되는 낙방에 1+1으로 따라오는 무시
그리고 일일이 다 써 내려갈 수 없는 각종 풍파.
참 잘 견뎠다.
무쇠. 참 잘했다.
비운 자리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운 것.
사람을 비운 자리에 진정한 내 친구들의 공간을 더 넓혀준 것.

꽃다발은 없다.
고요한 공간 속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됐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