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
사람이 사람을 품을 때는 방이 필요하다.
어떤 방은 시골 할머니집 안방처럼 푹푹 찔 정도로 보일러를 때기도 하고
어떤 방은 청소조차 않고 시큰하고 냉하게 방치해 두는 방도 있다.
빈 방. 평생 비우고 싶은 방. 내 부모의 방.
엄마랑 나는 쫄면과 호떡 친구였다.
다 큰 지금도 쫄면이나 호떡을 먹을 때 그때 그 추억으로 먹는다. 오랜 전통을 이어온 그 쫄면집은 메뉴가 네 개뿐이다.
비빔, 유부, 어묵, 냉쫄면 이렇게 네 개다.
우리는 나란히 비빔을 한 그릇씩 먹었다. 듬뿍 올려진 야채에 그 가게의 비법소스를 잘 비벼먹으면 쫄깃한 면이 기다리고 있다. 면을 먹기 전 장전하는 기분으로 육수를 후루룩 마셔주고 2차전을 시작한다. 정말 맛있는 집을 가면 수저는 무기가 되고 식탁은 하나의 전쟁터가 된다. 추억이 깊고 또한 맛있다.
디저트로 늘 호떡을 먹었다. 통실통실한 빵 안에 달콤한 설탕소스가 입 안 가득 퍼져나갈 때의 그 황홀함을 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 호떡집은 없어졌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 그 호떡집의 맛을 따라가는 집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엄마는 간식 친구였다. 애교 없이 무뚝뚝한 성격의 나는
"별아, 맛있나?"라는 엄마의 질문에 늘 "응" 한마디에 고개만 끄덕였다. 없어진 호떡집처럼 행복했던 추억은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엄마와 함께 하는 행복이 그리 길지 않은 걸 알았다면 그때 좀 더 미소 짓고 좀 더 길게 말할걸 그랬다.
알싸한 마늘 젖내.
어릴 적 엄마에게는 늘 같은 냄새가 났다.
엄마가 자주 입던 갈색과 초록의 스트라이프가 섞인 티셔츠에도 늘 그 냄새가 났다. 엄마의 냄새는 하나의 집과 두 명의 부모 그리고 나를 연결시켜 주는 연결고리였다.
이렇게 가을 우체국 같던 추억들을 잿빛으로 바꿔버린 것은 아빠의 취중 손찌검과 부모의 끊임없는 다툼, 그 속에서 나를 한줄기 빛 삼아 나에게 모든 걸 걸었던 엄마의 욕심이었다.
나의 부모는 사회적 약자였던 어린 나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취중 손찌검의 타깃은 내가 되었다.
집 안의 모든 불이 요란하게 켜진다. 쿵쿵거리는 발걸음이 들리고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수에 맞게 방문이 열린다. 내방의 불이 켜지고 자는척하는 나의 얼굴에 잡다한 물건들이 던져진다.
잡아 끌리듯 거실과 창고방을 오가며 지옥 같은 매타작이 시작된다. 하루는 아빠라는 사람이 있는 힘껏 나의 목을 바닥으로 내리꽂은 적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죽이고 싶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원인은 없다. 도와주는 이도 없다. 내가 맞지 않으면 본인들이 타깃이 되기에 밤이 끝나갈 때까지 엄마도 동생도 모두 각자의 방을 지킨다.
30대가 되어서까지 내 몸과 마음에 난도질을 하던 부모.
그 두 사람의 방을 비운다.
내 부모의 방은 빈방이다.
얼음장같이 냉기가 돌고 시큰하다.
열지 않고 묵묵히 묵혀두려 한다.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