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방

서정은

by Seriel J

참 그랬지. 내가 관심이 생겨 알아가고 싶은 사람은 내 마음에 비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 마음을 얻고자 부단히 공을 들였다. 자연스럽게 수직관계 또는 갑을관계를 자처한 것이다. 연락도 내가, 만남의 주선도 내가, 밥이나 먹으려면 장소도 내가 알아보고 센스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카페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알아봤다. 답을 요하는 다른 메시지들보다 늘 우선순위에 그 사람을 두었다. 이게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었는지 지금은 안다. 지나온 세월들에게 깨우침을 얻었다.

✉️:별아, 뭐 해?
내 친구 정은이는 잊을만하면 연락이 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내가 쥐어짜 낸 문장이면 좋겠지만 드라마 '도깨비' 대사다.
정은이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다. 말투가 엄청 예쁜데 느리게 말한다. 낭창한 감도 있다. 심지어 얼굴도 예쁘다.
SES 유진 닮았다. 잠도 많다. 예쁜 나무늘보 같다.
결혼해서 두 아들과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내 친구는 맛있는 걸 먹을 때, 좋은 곳을 볼 때, 친구가 사는 곳과 내가 사는 곳을 편히 오갈 수 있는 교통기관이 더 생겼을 때 늘 나를 먼저 떠올려준다. 그 마음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걸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우리는 여름과 겨울에 호캉스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차도 실컷 마시고 술도 한잔 한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필터링 없이 털어놓고 웃고 운다. 그러고 나서 호텔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불안한 선상에서 내가 애쓰게 만들지 않는 내 친구.
나의 성취와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내 친구.
살면서 이런 친구 하나면 됐다. 행복하다.
이제는 내가 더 많이 찾고 친구를 행복하게 해 줘야지.

우리는 각자 마음에 방을 짓고 살아간다.
내 마음의 방은 투숙객이 많다. 내가 머무는 방, 내가 가꾼 가족이 머무는 방, 타인이 머무는 방 등등 다양한 투숙객들이 묵고 계신다.
그대들을 애쓰게 만드는 관계가 있는가?
놓으시라. 부디 그들에게 큰 방을 내어주지 마시라.
묵묵하고 온온하게 그대들의 곁에서 함께 해주는 관계에
더 깊고 더 큰 방을 내어주시라.
오늘은 정은이의 방에 보일러도 돌릴 겸 연락해 봐야겠다.

*서정은은 한 글자만 바꾼 내 친구 가명이고
별이는 저자의 필명이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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