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의 방

화정동 황보살님

by Seriel J

먼발치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다 못해 귀를 찌를 듯이 울려대기 시작한다.
은영은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든다.
"하... 벌써 여덟 시네... 진짜 일어나기 싫다."
혼잣말을 내뱉은 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운다.
벽에 걸린 가면들의 향이 유난히 짙은 아침이다.
은영은 '직장'이라는 가면을 살짝 터치하고는 욕실로 들어간다.
위이이이잉ㅡ돌아가는 드라이기의 모토음에 맞춰 은영의 머릿 속도 온갖 생각들로 뒤엉켜있다.
'업무적 갈등으로 인사하기 껄끄러운데 오늘은 또 어떻게 인사하지?..'
'어제 조금 피곤하더라도 업무를 마무리하고 잘 걸...'
잡다한 생각들이 잡음을 낸다.
"하... 스트레스."
은영은 열 숨 같은 한숨이 담긴 말을 툭 뱉는다. 끝자락의 축축함을 수건으로 탈탈 털며 사과향 나는 스킨으로 얼굴을 정돈한다.
벽으로 가서 '직장'이라고 적힌 가면을 쓴다.
가면을 쓰고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 은영은 환하게 웃고 있다. 눈은 별을 심어놓은 듯 반짝거린다. 머리카락을 뒤로 한 번 쓸고 향수를 뿌린다. 빨간 구두를 신고 문을 열고 나간다. 은영의 방은 향수의 은은한 꽃내만 남아있다.
은영은 가면을 벗고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생각을 할까?
옅어지다 못해 사라져 버린 꽃내처럼 가면의 배터리도 방전되지 않았을까. 갑갑했던 가면을 손에 쥔 채 본연의 얼굴로 귀가하지 않을까.

사회적 가면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시대.
방전되는 배터리를 충전하듯 가면도 충전해서 때에 걸맞게 쓰고 벗을 수 있는 시대.
가면에 의존하며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 광고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쉽게도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상하리만큼 누군가가 발명해 낼 것만 같다. 문득 '내가 발명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소가 터진다.

가면에 가려진 이면은 얼마나 고독할까?
하루에 가면 한 두 개쯤 바꿔 쓰며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의 비극이 아닐까. 씁쓸한 기분이 냉기가 되어 마음을 식힌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덜 미워지는 과정이 아닐까.
이것은 마치, 세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간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로 살아가시라. 완성형이 아니면 어떠한가.
미완성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 부족한 내가 조금 미워지면 어떠한가.
내일 더 발전한 나를 더 아껴주고 사랑하시라.

이제 그 갑갑한 가면들, 하나씩 벗어던져 보시라.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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