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함 속에 덤덤함이 얹어진다
어릴 때부터 1년에 한 번씩은 지독한 감기로 고생을 했다.
요즘의 독감이지 않았을까. 참 지독하게도 앓아누웠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를 갔다. 열이 펄펄 끓어서 온몸이 불덩이였고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있는 나를 위해 친구들은 하나둘씩 외투를 벗어 덮어 주었다. 열이 높아 외투를 열 벌, 스무 벌을 덮어 주어도 따뜻해지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정성이 모이고 모여 내 마음의 감기만큼은 따습게 데워 주었나 보다.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께서는 엄마에게 연락하셨다.
"아이를 데리고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아파합니다."
그 길로 조퇴를 하였고 그날따라 운동장을 거쳐 교문까지 가는 길이 지구 한 바퀴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내게 지폐를 두어 장 쥐 켜주고는 혼자 병원에 다녀오라고 이야기했다.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가는데 걷는 걸음마다 고통이 이어졌다.
'지금 여기서 울면 어쩔 건데? 어떻게 해서든 가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걷는 걸음마다 아스팔트가 발목을 잡아 끄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순서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희고 차가운 병원 의자, 세균 조각을 그어놓은 듯한 흰 천장, 병원 돌바닥의 냉기가 아직도 선하게 그려진다.
꼬마의 몸으로 소리도 내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훌쩍이고 있는 내 발끝 너머로 병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아픔만 생각한 채 침묵만이 흘렀다.
무엇이 그렇게 눈물을 흐르게 하였을까? 어릴 적 그 꼬마 녀석은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집으로 돌아가 약을 먹고 닥치는 대로 잠을 청했다. 간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고 자다가 깨서 눈을 떠 보면 엄마가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3일을 앓았을까. 차차 몸이 회복되었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엄마는 내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나를 간호하면서 3일 내내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봤고 입이 쓴 나는 그걸 사 오면 한 입도 먹지 못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남은 음식은 결국 엄마가 다 먹었다고 했다. 심지어 뭐가 보이는 사람처럼 헛소리까지 했다고 한다.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고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엄마와 내가 이렇게 평범한 행복을 영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씁쓸함 속에 덤덤함이 얹어진다.
해마다 찾아오는 감기. 감기와 마주하면 어릴 적 기억이 문을 두드린다. 어릴 적 나를 간호해 준 엄마의 기억도 문을 두드린다.
엄마와의 추억이 너무 따뜻해서 그 뒤의 상처가 체감적으로 더 차가웠나 보다.
지독한 미움의 뿌리는 결국 사랑인가 보다.
오늘은 유난히 여운을 담고 싶은 구절이 많다.
엄마와 내가 이렇게 평범한 행복을 영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씁쓸함 속에 덤덤함이 얹어진다.
씁쓸함 속에 덤덤함이 얹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