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지가 뭔데

by Seriel J

"우리 남편이 여기 모임은 검증이 돼서 만나도 된다네요."
정적이 흐른다. 모두가 방금 '검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맞는지 귀를 의심한 채 서로를 바라본다. 말을 하지 않지만 서로 다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입 밖으로 뱉지 않았을 뿐, 귀에 들리지 않았을 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두의 마음이 통했다.
'동공 지진'이라는 표현은 이런 상황에 아주 적합하다. 일렁이는 동공을 주고받으며 '그대의 일렁이는 동공에 건배'라는 무언의 건배사를 던지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표현을 쓰는 걸까? 참 이해가 안 된다. 물론 혼자서는 실컷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지만 그걸 굳이 언어로 뱉어내는 것은 무슨 심리일까?'
머릿속으로 한참을 생각해 본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음절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두 음절이 떠오른다.
불쾌. 그렇다. 지금 이 감정은 불쾌다.
나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마주한 적이 없다. 그 흔한 밥 한 끼 먹어본 적 없고 그 흔한 차 한 잔 곁들여 본 적이 없다. 얼굴만 알뿐 그녀의 남편과 관련된 것은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아는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그들의 부부생활 이야기뿐. 한 번씩 오고 가는 다툼의 에피소드뿐.
그런데 '검증'이라는 표현이 참 어이가 없다.
'지가 뭔데 나를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검증하지? 지가 뭔데.'
밥 한 끼, 차 한 잔 한 적 없어도 그녀의 언어 몇 마디로 그 자리의 사람들이 그녀의 남편에게 도마 위에 올려져 자유롭게 판단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기준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내가 좋아죽겠고 친해지고 싶어 죽겠는 사람이 내 마음과 다르게 나를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싫어죽겠는 사람이 나를 스토커처럼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남들이 다 별로라고 일컫는 사람이 내게는 귀인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남들이 다 괜찮다 하는 사람이 내게는 천년의 악연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을 좋아하는데 지표가 있다면 참 재미없지 않은가?
향기. 그 사람만이 풍기는 향기.
그 향이 또 그리워지게 만드는 사람.
온도와 습도. 추억을 둘러싼 공기의 온도와 습도.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
이제는 진짜 내 친구를 사귀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잡다한 조건들을 싹 뺀 진짜 내 친구.
추억을 둘러싼 온도와 습도가 맞고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향이 그리워지게 만드는
진짜 내 친구.
그런 친구. 진짜 내 친구.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4화친구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