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탁기가 아니니까
우지끈ㅡ하고 두통이 온다.
"지긋지긋해" 현정은 읊조린다.
나지막하게 '나도 꽤 뜨겁소'라고 말하는듯한 햇빛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남색 티셔츠의 보풀을 비춘다. 온종일 뒤엉킨 땀 냄새가 시큰하게 코를 찌른다.
노을이 뉘엿뉘엿 혀를 날름거리며 현정의 하루를 조롱한다.
현정은 두통을 핑계 삼아 "아ㅡ씨발"이라고 침 뱉듯 말을 뱉는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놈의 짜증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평소와 같았더라면 원두 볶는 소리에 홀려 한 손에는 커피를,
빵 냄새에 홀려 한 손에는 빵 봉지를 들고 '김밥을 사? 말아?' 고민하며 걷던 거리도 마냥 길게만 느껴진다.
따갑다.
시선이 따갑다.
따가움의 끝에 시선을 가져간다. 그년이 멀뚱멀뚱 서있다.
현정의 뒤에서 없는 말을 지어내어 궁지로 몰아낸 년.
거짓말이 들통나 결국 본인이 궁지에 몰린 년.
그년이 서있다.
현정은 생각한다. 시큰한 몸을 끄집고 그년에게 다가가 땀 냄새를 곁들인 귀싸대기라도 내리쳐야 하나.
머리를 잡아채서 다 뽑힐 때까지 흔들어버려야 하나.
너도 죽고 나도 죽자 달려들어 나란히 경찰서 의자라도 앉아봐야 하나.
선택지는 여러 개. 시간은 지금뿐.
얼마나 노려보았을까 현정의 눈은 희번떡한 흰자위가 가득하다. 모모 귀신이라고 이야기했던가? 눈을 치켜뜨면 모모 귀신같다고 친구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모모고 나발이고 어떤 귀신이라도 돼서 평생을 따라다니고 싶을 정도로 미운 년.
조롱하는 노을 속에서 현정은 그년을 마음으로 두들겨 패고 황홀한 표정으로 경찰서 의자에 앉았다. 죽어도 따라갈 것이라며 쭉 단짝이 되어 머물러주겠다는 저주도 퍼붓는다.
노을 속 땀 냄새를 곁들인 한 판의 싸움을 상상하니 꽤 통쾌하다.
뜨겁다.
현정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뭣 같은 년. 너 스스로는 알 거다. 너 자신이 얼마나 후진지.'
현정은 그년과의 추억을 미움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버린다.
가까이에 있던 존재가 아픔을 주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생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여주가 남주에게 한 대사가 떠오른다.
"가슴을 찢어놓고 이깟 휴지로 되겠어요?"
상처는 세탁할 수 없다. '상처 세탁소'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그런 건 없다. 그러니 누군가로 인해 아프다면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미워하시라. 욕도 하시라. 마음속으로는 뭐든 할 수 있지 않은가? 다 하시라.
그래야 다시 숨이 쉬고 싶어진다.
하나 더,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 주지 마시라.
만약 주었다면 꼭 사과하시라.
거짓은 언젠가 민낯이 드러난다.
모모 귀신이 찾아가기 전에 꼭 사과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