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현정의 방

by Seriel J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고 숨이 가쁘게 쉬어진다.
세상 모든 것들이 서걱거리는 칼날을 품은 보아 뱀이 되어 현정의 몸을 서서히 옥죄어온다. 숨 한 조각 남아있을 때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뜬다. 새하얀 천장이 보이고 방 안 가득 새벽의 향이 난다. 현정의 심장은 아직 꿈에 머물러 도무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삐ㅡ시작된 이명. 고주파의 소리가 귀를 통해 뇌까지 관통하는 기분이다. 온몸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축 늘어진다.
"하...." 방문 밖으로 남편의 새벽 한숨이 들린다.
그 한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에 잠긴다.

다시 눈을 뜬다. 시계는 어느덧 오전 8시가 가까워져 있다.
매일 반복되는 꿈의 끝자락
매일 반복되는 아침해의 향연
'세상은 내가 없어도 또 아침해가 뜨겠지?'
문득 남편의 새벽 한숨ㅇㅣ 떠오른다.
'내가 죽으면 누가 장례식장에 와줄까?'
'죽어버릴까?'
아침해의 향연 속에서 맞이하는 죽음.
꽤 그럴싸하다.
띠링- 현정의 핸드폰 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한음절의 그소리가 생각을 멈추게 한다.
✉️여보, 악몽꿨어? 밥이랑 약 잘 챙겨먹어. 사랑해
머리가 뜨거워지면서 현정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침해를 본다.
'오늘은 밖으로 한 번 나가볼까...?'

현정은 과거의 나다.
과거부터 쌓여온 상처들이 엄마가 뱉은 말과 함께 봇물터지듯 터져나오며 내마음의 감기가 시작됐다.
지긋지긋한 이 감기는 도무지 나을 기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나를 죽여가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부단히도 애썼다.
잘 보이고 싶다.
소속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놓지못한 끈은 나를 더욱 불안하고 피폐하게 만들었다.
참 모순이어서 참 안타깝지 않은가?
나를 낳아준 부모의 인정욕구에 목을 메는 그림이.
현실에 굴복하여 차디 찬 사회에서 동동 굴려도 모자랄 두 발을
나를 존재하게 해준 사람에게 존재의 가치를 부여받고자 하다니. 모순이다.
그 끈을 놓기까지 참 많은 곤고가 있었다. 어찌해야 이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감정의 가지치기가 이루어질까? 질문을 반복하며 터널을 걸었다. 무작정 걷던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희미한 빛을 봤다. 그 빛은 답이 없던 내질문에 내려진 하나의 해답이었다.
사랑.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 곤고 속에 나를 방치했다.
누구든 두드려도 되는 사람마냥 나를 방치했다.
매도 맞으면 맷집이 생긴다는 말처럼 상처의 쓰라림에 무던해질 정도로 나를 방치했다.
그렇다. 내가 그들에게 나를 그리 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이다. 해답을 얻으면 무릎팍 도사처럼 무릎을 탁 치며 시원해질 줄 알았지. 오히려 무덤덤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부모를 배제한 내인생의 설계도를 그렸다.
오로지 나를 위한, 인생의 하나뿐인 설계도.
그 설계도의 디폴트는 나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다.
결국 사랑때문이었고 결국 사랑이다.
나를 귀한 손님으로 여기고 인생의 중심에 나를 둔다.
모든 날, 모든 순간 나를 위한 모색을 한다.

설계하시라. 나를 위해.

인생의 터널 구간을 걷고 있다면 얘기해주고싶다.
인생은 하나의 길이며 그 길을 걷는 여정이다.
당신의 그 서늘하고 어두운 시간들은 지금보다 더 크고 빛나는 여정으로 가는 과정이라 말하고싶다.
큰 선물을 받기 전, 인내를 시험하는 과정이라 말하고싶다.
길 위의 당신, 힘내시라.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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