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의 방

지연의 방:태양

by Seriel J

"여보... 커튼 좀 쳐줘. 태양이 너무 강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편을 부른다. 그러나 그 어떤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는다.

"여보... 밖에 없어?"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물컵에서 물방울이 또르륵 흘러 내려와 톡 하고 떨어진다. 물방울에 반사된 빛이 지연의 시선에 꽂힌다. 옅게 번지는 빛조차 역력한 부담감이 되어 속을 메스껍게 한다. 과음을 한 다음 날 숙취처럼 머리에 돌덩이가 얹어지고 구역질이 나오기 시작한다.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통을 붙잡아야 하는데 온 바닥이 흑빛 뱀들로 뒤엉켜있다. 뒤엉킨 뱀들 사이로 끈적끈적한 진액들이 더해져 마루가 낑낑거리듯 버거운 소리를 낸다.

밖으로 발을 디딜 마음 한 컵이 부족해 울렁거리는 속을 침대 시트 위에 비워낸다. 먹은 것이 없어 쥐어짜듯 구역질을 해도 나온 것은 겨우 노란 위액뿐이다. 야속한 태양은 눈부신 광내를 풍기며 노란 위액을 비추기 시작한다.

역한 냄새가 온 사방을 떠돌아다니고 냄새 때문인지 뱀들이 더욱 요동친다. 마루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듯 더욱 낑낑거린다.

철컥ㅡ방 문이 열리고 지연의 남편이 한숨을 뱉는다.

"하... 화장실로 가서 토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햇빛 때문에 몇 번이나 부르다가 이렇게 됐어... 바닥에 뱀들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어."

"지금 새벽 1시야... 해가 어디 있다고 그래? 뱀은 또 뭐고? 제발 정신 좀 차려..."

"......"

지연은 눈을 비비고 주변을 둘러본다. 방 안 가득 끈끈하게 일렁거리는 뱀은 온데간데없고 마루가 비웃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창 밖은 태양은커녕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다. 지연은 남편을 바라본다.

"여보... 나 어쩌면 좋지... 나 정말 왜 이러지?"

"약 먹어.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남편은 지연의 몸을 끌어당겨 어깨를 톡톡 두드리더니 협탁에 놓인 물과 함께 약을 건넨다. 시트를 걷어 방을 나간다. 지연은 물끄러미 약과 물을 바라본다. 초점 없는 눈으로 약을 삼키며 생각한다.

'내일 몇 시에 해가 뜰까? 해가 제일 강하게 뜰 때 황홀하게 죽어버릴까?'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조깅을 한 뒤 차에 앉아 일출을 바라보던 여주는 자살을 한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의식을 되찾은 후 실실 웃으면서 대사를 뱉는데 그 대사가 참 어처구니가 없다. 일출이 너무 황홀해서 손목을 그었다고 이야기한다. 가족들의 걱정이 담긴 온갖 비난을 듣는다.

철없던 20대, 여주의 대사가 너무 멋있었다. 죽음의 문턱이 다가온다면 황홀한 태양의 품에서 맞이하겠노라 생각했다.

반만 철든 30대, 멋있다는 표현도,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표현도 섣불리 하지 않는다.

영화 속 여주가 그토록 죽음을 갈망한 데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얼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누가 그녀에게 언어의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우울증 [Depressive disorder]: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


알게 모르게 주변에 우울증을 앓았고 혹은 앓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소식을 접했을 때 말문이 막히고 머릿속으로 무슨 말부터 꺼내는 것이 맞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있으랴. 쓰고 옅은 웃음 뒤,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진심이 아닌 것을 알기에 내 마음이 다시 쓰라린다.

복잡할수록 단순함의 법칙이 관통할 때가 있다 했던가.

지구력 하나는 자신 있기에 두 가지를 택했다.

그냥 있어주는 것과 끝까지 들어주는 것.

사과 한 봉지, 귤 한 봉지 사들고 가서 옆에 앉아 서걱서걱 깎아 함께 먹기도 하고, 아무 말 없어도 주변에 머물러 책만 보고 오기도 하고.

그러다 어떤 날, 말문이 트이면 무조건 들어주고 무조건 편 들어주기도 하고.


단순함의 법칙을 활용한다.

몇 년 전, 나의 벗들이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돌려줄 차례인가 보다.

몇 년 전, 나의 벗들이 내게 주었던 사랑들을.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P.S 마지막 이 글귀를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한 번 살다가는 인생, 하고 싶은 말 다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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