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야밤의 횡단보도 막춤

by Seriel J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미친놈만 할 수 있는 발상의 행위들이 정말 많다.

그중 하나는 야밤에 횡단보도에서 춤을 춰 보는 것이다. 미친놈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하기에는 요즘 SNS에 횡단보도 댄스가 정말 많다. 부럽다. 나도 끼워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때는 2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정은 청소를 언제 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화장실의 민트 색 타일만 죽어라 바라보며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야야야! 넌 네가 엄청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하지? 너 존나 못 춰. 알아?”

2학년 선배님 1,2,3이 손가락에 가느다란 담배를 꽂고 쪼그려 앉아서 술 냄새를 풍기며 똥 군기를 잡고 있다.(지금 생각해도 군기라는 표현도 아까워 ‘똥’이라는 한 음절을 덧붙여 본다.)

황진이 급 미모로 황진이 급 학춤을 출 것도 아닌데 뭣 하러 여기를 내 발로 기어 들어와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나 스스로가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참나, 내가 춤을 못 춘다고? 지보다 못 추면 다 못 추나? 못 추는 건 알겠다 이거야. 그럼 곱게 말하지 담배는 왜 뻐끔뻐끔 피우면서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네. 저러면 지가 좀 더 멋있어 보일 것 같은가? 농촌은 곡식 풍년, 여기는 지랄 풍년이다.

“야야! 대답 안 하냐? 너 속으로 무슨 생각하고 있냐?”

“아닙니다!”

쫄았다. 조금 쫄았다. 많이 쫄지는 않았고 조금 쫄았다.

“야! 진짜 나대지 말고 똑바로 해라!”

“네! 죄송합니다!”

그 다음날, 현정은 모 대학교 댄스 동아리, 유XX를 그만뒀다.


때는 1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현정은 입 안 가득 사탕을 물고 현관문을 연 뒤,

“엄마! 아빠! 아무도 없나요? 없지요? 없으면 좋겠어요!”

외치고 현정만의 비밀스러운, 냉한 골방으로 들어간다.

검은색 카세트에 가요가 믹스된 테이프를 넣는다.

딸깍 소리와 함께 전주가 시작된다.

일렁거리는 리듬에 맞춰 꿀렁꿀렁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시절 유행하던 댄스는 다 외우고 있던 현정은 학교에서도 춤 하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웨이브 구간이 나오자 멋지게 웨이브를 하고 길지도 않은 머리를 찰랑 거리며 고개를 든 순간,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엄마가 홍두깨를 들고 오기 전에 재빠르게 노래를 끄고 현관문으로 달려 나가면 될 테니까.

“춤.추.지.말.라.고.했.지?”

엄마는 괴성을 지르며 홍두깨를 들고 현정에게로 달려왔다. 진격의 거인이 따로 없다.

홍두깨를 든 중년의 여성과 맞지 않기 위한 초등학생의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그날, 현정이 아끼던 ‘가요 믹스 테이프’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비난이 이렇게 무섭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지난날의 갈증이 희한한 방향의 버킷 리스트가 될 줄 누가 알았던가.

지금 다시 춤을 배운다고 상상하니 벌써부터 뼈마디가 쑤셔 온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나는 하고 싶은 것과 마음먹은 것은 그게 언제가 되었든 이뤄야 직성이 풀린다.

꼭 하고 말 것이다.


나중에 모 작가가 야밤에 횡단보도에서 신명 나게 춤을 췄다는 이야기를 듣거든,

이 책의 주인이겠거니 생각해 주시라.

신청곡도 받겠다. 연락 주시라.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4화나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