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2:환경에 지배당하지 말고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 할 것
"줄 서세요! 출석 부르겠습니다!
없는 이야기 지어낸, 구라 타운 1번 미친놈님, 오셨나요?"
"아... 네! 좀 작게 부르세요. 짜증 나게 진짜... 씨"
"중립 기어 박으면서 여기저기 붙어 다니면서 말 전하신, 비둘기 타운 2번 미친놈님, 오셨나요?"
대꾸 없이 '구구구-'소리와 함께 한 명이 빼꼼히 고개를 치켜든다.
"어이! 2번 님! 지금 여기 뭐 훌륭해서 모였어요? 입 없어요? 대답을 하세요! 대답을! 머리 치켜들고 눈 끔뻑거리면 다예요? 예?"
".... 네... 왔습니다... 구구"
"필요할 때만 교묘하게 이용하신, 소패 타운 3번 미친놈님 오셨어요?"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
귀가 찢어질 듯 비명에 가까운 웃음소리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출석을 부르던 이도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에 모든 감각이 경직되었는지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으로 피해를 준 존재가 오히려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이대로 압도당하여 같은 상처를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며 받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처한 환경을 달리 받아들여 태도로 보여줄 것인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타인이 넘나드는 선이 모호하다. 그 불분명한 선은 타인의 언행에 따라 감정과 함께 파도로 일렁인다.
타인이 만들어 낸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다.
압도감을 넘어서지 못해 환경에 맞춘, 즉 맞춤형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참고 참고 또 참고, 욱여넣고 욱여넣고 또 욱여넣은 감정들이 결국 화산 분출하듯 폭발하며 가슴 깊숙한 곳에 생채기를 낸다.
그 후 자기 연민이 시작된다. 본인이 이렇게까지 참고 맞춰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주었다는 등등의 뻔한 스토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뻔한 스토리로 주변인들마다 붙잡고 늘어놓기 시작한다. 입의 문을 열 때마다 본인이 을이었음을 확언하고 또 다른 을의 환경을 자처한다.
무수히 많은 책과 영상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외롭게 여기지 말고 익숙해질 것이며 어찌하면 단단하게 쓸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룬다.
홀로 걷는 길이 두려우신가? 이제는 두려워 마시라!
홀로 남는 것이 두려워한 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 참지 마시라.
타인이 줄넘기하듯 넘나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당신과 당신의 일상을 반죽하듯 주물럭 주물럭 할 자격은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타인이 넘나들 수 없는, 본인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시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용납할 수 없는 범위를 정하시라. 그래야만 한다.
한 번 깨진 그릇은 다시 붙일 수 없고 이미 깨져버린 부분부터 다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다시 곁에 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다시 곁에 두는 순간, 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불분명한 허용 범주로 여기게 된다.
시간의 벽을 허물다 보면, 결국 같거나 비슷한 이유로 다시 상처를 준다.
망각의 힘. 그것은 시간이 가진 힘이자 인간이 가진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힘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환경에 지배 당해 이것저것 재고 따지느라,
정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거리느라 스스로를 그만 괴롭히시라.
혼자 보내는 시간이 두려워 전화통 붙잡고 여기저기 의지하면서 을이 되지 마시라.
내가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다.
내가 불편한 게 결코 타인에 의해 편한 것이 될 수 없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 오로지 나만 남겨두고 판단하시라.
달리 판단하시라. 그리하여 태도로 보여주시라.
당신만의 분명한 선을.
이제는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