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브레이킹의 타이밍이 주는 힘
빠르게 바뀌는 빛의 순환. 초점 잃은 눈으로 머리는 유리창에 기댄 채 밖을 바라본다.
차가운 유리창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조금 식혀준다.
"하.... 머리 아파"
현정은 작고 옅은 한숨을 내뱉고 눈을 감는다. 눈을 감자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오늘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얼굴과 이름을 매칭하는 찰나, 장면이 급변한다.
처음 가 본 카페와 그토록 먹고 싶었던 빵들이 보인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빵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떠오른다.
"난 오늘 무조건 이 빵을 먹고 말테야!"
"아직 안 먹어봤어? 그렇게 기대할 맛은 아니었어. 무난한 맛?"
일행 1의 말에 현정이 대꾸한다.
"아직 안 먹어봤어. 오늘 이건 꼭 먹을 거야! 너무 궁금해!"
일행 1은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의 꼬리물기가 시작된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메뉴를 선정했나? 일행 1은 먹고 싶지 않다는 의도였는데 내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밀어붙인 걸까?'
눈은 감고 있지만 눈동자는 상하좌우로 회전한다.
멈추고 싶은데 멈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눈을 감은 채 핸드폰 액정을 촉촉해진 엄지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연락해서 빵값을 더 보내야 하나? 나의 이기심을 사과해야 하나?'
생각의 풍선이 넘실넘실 떠오르더니 시야를 가득 채운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뛰는 심장만큼 손이 축축해진다. 가파른 호흡의 끝자락에 터져 나갈 듯한 심장 박동수와 동시에 현정은 눈을 뜬다.
현정의 상상 드라마는 막을 내렸고 갑자기 오늘 만난 사람들 사이에 얇은 살얼음이 생겼다.
현정 홀로 어색한 침묵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침묵은 '조심스러움'이라는 방을 만들었다. 이 살얼음은 녹지 않고, 현정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조용히 따라왔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주면 좋겠다. 현정은 이내 불편한 마음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오늘 메뉴 말이야. 너무 나만 생각하고 고른 것 같아. 혹시 불편했다면 미안해.'라는 몇 줄이 그렇게나 어렵다. 단체 톡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개인 톡을 활용할 것이 좋을지 새로운 고민의 문이 열리던 찰나 톡이 하나 올라왔다. 일행 1의 톡이었다.
'오늘 먹은 빵 맛있더라! 전에 먹을 때는 오늘 같은 맛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참 맛있었어. 고마워.'
그 몇 줄의 글에 안도감이 물결처럼 번진다.
현정은 핸드폰을 뚫어져라 다시 본 뒤, 외출복을 정리하기도 전에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하... 피곤해. 조금 있다가 답해야지."
안도감 끝에 두통이 묻어져 나온다.
답장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다. 읽음 숫자 뒤에 숨어 있던 마음들을 다시 해석하고 있을 본인을 상상하니 다시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난... 왜 이렇게 나 스스로를 태우는 걸까?"
현정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냉기 가득한 현대 사회인 중 그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랴.
아이스 브레이킹의 타이밍. 그 타이밍을 놓치면 살얼음은 금세 두꺼운 얼음판이 된다.
얼음의 두께만큼 생각의 골도 깊어진다.
생각의 골. 사색의 늪.
대화 없는 시간만 허망하게 흐르면 그 채팅방은 결국 냉골 가득한 다락방이 된다.
아이스 브레이킹은 거창하지 않다.
몇 줄의 용기 한 컵.
몇 줄이 아니어도 좋다.
한 줄의 용기 한 컵.
먼저 건네는 온온함.
그 한 컵이 얼음을 녹인다.
그 한 컵을 먼저 내어주는 이가 꼭 한 명씩 있다.
오늘은 그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야지.
그 고마움의 끝에 그저 이 말을 보태야지.
“나의 우울이 나도 낯설고 버거워요. 미안해요.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라고.
그에게 닿을 언어의 한 걸음이,
꽁꽁 얼어붙을지 모를 순간을 따뜻한 시작으로 바꿀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