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과연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일까?

by Seriel J

유년 시절,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는 이러했다.
베니스에 안토니오라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친구 바사니오를 도와주려고 고리 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렸다.
하지만 돈을 빌려준 샤일록은
돈을 못 갚으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달라고 했다.
안토니오는 돈을 갚지 못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때 바사니오의 아내 포셔가 변장하고 나타나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했다.
결국 안토니오는 목숨을 구했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포셔 같은 지혜로운 여성으로 크고 싶다는 희망을 품은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가 성인이 된 지금,
희극으로 분류된 이 작품에 현실과 이성이 더해진다.
작품에 나오는 샤일록은 유대인 중 한 명이었고 당시 유대인들은 '게토'라는 격리 구역에서 지내야 했을뿐더러 직업적 제한이 있었기에 불가피하게 생존을 위한 고리대금업을 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단순한 탐욕적 선택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선의 상징처럼 나오는 안토니오는 기독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을 모욕하며 침을 뱉고 발로 차는 등 한 마리의 짐승처럼 취급하였다.
기독적 자비를 일삼는 것이 아닌, 존엄적 차별을 일삼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샤일록의 재산을 들고 아버지를 배신했다.

인생의 벼랑과 궁지에 몰린 샤일록은 과연 돈이 필요했을까?
아니다. 그의 복수는 모욕, 배신, 잃어버린 존엄성 등을 겨눈 칼날이었던 것이다.

그런 샤일록을 향해 남장을 한 포셔는 그럴싸한 언변으로 법의 언어가 정의를 가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낮은 경계선의 법정, 상황에 따른 법적 효력의 변동, 언변에 휘둘리는 군중 심리를 간접적으로 비추는 것은 아닐까?
또한, 기독적인 종교의 이면에는 무수한 차별과 박해가 있었다.

여성이 법정에 설 수 없어
'공작의 위임장을 가진 법학자'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그런 여성의 말에 들썩이는 군중.
종교의 모순.

과연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희극으로 여겼을까?
어쩌면 세상에 완벽한 평등, 완벽한 정의, 완벽한 자비는 없다는 것을 희극으로 분류함으로 인해 현재까지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믿지 못하는 세계.
그것은
어른의 세계.

포셔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의심이 많은 여성으로 자랐고
그 여성은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이 많고
사회의 부조리는
그 여성에게 펜을 쥐켜 주었다.

과연, 그 펜은
완벽하고 솔직한
희극과 비극을 써내려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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