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방

토끼식탁

by Seriel J

"토끼야, 오늘 우리 집에서 밥 먹고 티타임도 할까? 시간이 되니?"
"좋아! 그냥 우리 집에 올래?"
"너희 집에? 나야 좋지!"
"파스타 좋아해? 파스타 해줄까?"
"파스타 엄청 좋아해. 먹고 싶어!"
"그럼 파스타 해줄게. 레스토랑처럼 예쁘게 해 줄게."
"우와! 너무 기대돼. 그럼 있다가 만나자!"

토끼와 약속한 시간은 오전 11시.
말로만 듣던 홈스토랑이라니. 현정은 기대감에 둥실둥실 천정으로 떠오른다.
토끼는 전직 요리사이다. 요리를 싫어하는 현정과 달리 토끼는 요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요리사의 삶까지 경험했다.
현정이 펜, 색연필, 분필을 들 때, 토끼는 불 앞에서 칼을 든다.
현정에게는 그저 빛인 토끼 요리사.
토끼의 요리를 가끔 먹어 본 현정은 토끼는 정성과 사랑을 담아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둥둥 떠오르는 기대감만큼 생각도 넘실넘실 흐른다.
폴짝거리는 마음처럼 발걸음 또한 폴라폴라 왈츠를 담고 있다.
왈츠를 추며 걸었더니 금방 토끼의 집 앞이다.
딩동하고 벨을 누르니 토끼의 목소리가 흐른다.
"왔어? 잠시만!"
톡톡 거리는 발걸음이 살포시 귀에 앉는다.
앞치마를 입고 서 있는 토끼의 얼굴에 사랑이 묻어 있다.
"우와! 맛있는 냄새! 너무너무 기대돼!"
"아니야. 내가 다른 것도 하려 했는데 가짓수가 별로 없어."
"아니야. 파스타만 해줘도 그저 감사해."
토끼 요리사는 뒷모습도 자신감이 넘친다.
예쁜 그릇에 오일 파스타를 담아내어 식탁에 올려놓는 토끼의 얼굴에 자신감이 뚝뚝뚝 흐른다.
현정에게는 없는 달란트. 그 달란트가 절친한 친구에게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올라온다.
"이제 먹자!"
토끼의 부름에 현정은 식탁으로 달려간다.
"와! 진짜 맛있어 보여! 정말 고마워! 나 누가 이렇게 오로지 나를 위해 음식을 차려준 적이 없어서 뭉클해. 오늘 이 식탁을 잊지 못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맛있게 먹어."

오일을 입은 매끈한 파스타 면이 씹히다가 끝자락에 매콤함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새우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톡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백하게 씹히고 그 위를 파프리카가 덮어주면 아삭함과 싱그러움이 화룡정점을 찍는다.
꾸덕한 크림 파스타와 토마토 파스타만 먹다가 오랜만에 오일 파스타를 먹으니 감동의 도가니다.
"나는 왜 오일 파스타를 해 먹을 생각은 못했을까? 한 끼를 먹어도 이렇게 차려서 먹으니 레스토랑 온 것 같고 참 좋다."
"그럼! 그리고 오일 파스타가 제일 쉬워. 맛이 조금 걱정도면 치킨 스톡을 써봐. 그럼 맛있는 맛이 입혀질 거야."

흐린 날의 구름 냄새가 토끼의 식탁으로 살포시 다가온다.
이런 날은 커피가 유난히 더 맛있다.
토끼는 달디 단 바닐라 라테, 현정은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커피의 취향도 다른 둘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이스를 택한다는 것. 얼음끼리 부딪혀 서걱거리는 소리만이 식탁을 채운다.

낯가림이 심한 둘이 만나 친구가 되었다. 어찌 친구가 되었는지조차 지금은 희미하지만 그날은 꽤 가치 있는 날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몰라 나란한 평행선을 그리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하나의 선을 함께 걷는 기분이다.
토끼와 친해지기 전, 현정이 쓴 손편지에는
'앞으로 우리는'라는 표현이 많았다. 앞으로의 시간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말과 글이 씨가 되듯 편지에 담은 글이 씨가 되었고 점점 여물어지는 시간과 과정을 겪고 있다.
돌이켜보면 토끼와의 첫 어색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위에 우리의 기억과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친구가 되는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대화들이 묶여 친구라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색한 침묵에서 시작된 만남이 앞으로 이어질 페이지의 첫 장이 되었듯이 말이다.

토끼는 여행을 시작한다. 인생이라는 여행.
현정과 함께 여행자가 되어 도전을 마주한다.
설레는 만큼 고난과 역경도 따르겠지만 그조차 토끼의 삶에는 건강한 파도로 일렁일 것을 안다.

토끼의 여행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언제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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