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모가지가 한 방에 떨어지는 목련

by Seriel J

드라마 여주가 이야기한다.

"난 목련이 좋더라. 떨어질 때 모가지가 한 방에 떨어지는 게 화끈해서 좋아."

저 화끈한 표현에 매료되어 목련이 피는 계절만 다가오면 여주의 대사가 생각난다.


현정의 집 앞에 목련이 고개를 내밀었다.

현정은 목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봄의 소식을 접한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네."

혼잣말을 툭 하고 던지고는 마네와 모네를 데리러 간다.

유치원 버스에서 통통거리며 튀어나오는 모습이 공 같다.

볼살도 통통, 걷는 모습도 통통, 말투도 통통.

인간이 빚어진 후 제일 귀여운 시기이다.

모네는 자연에 관심이 많은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다.

그런 모네의 눈에 목련이 들어왔다.

"선생님, 꽃이 폈어요. 저기 하얀 꽃 좀 보세요."

조그만 도자기 인형 같은 모네가 짧디 짧은 새우깡만한 손가락으로 목련을 가리킨다.

"그렇네. 꽃이다. 이제 봄이 오나 봐."

"선생님, 저 꽃의 이름은 뭐예요?"

"저 꽃은 목련이야. 이제 활짝 필 준비를 위해 봉오리가 올라온 거야."

"그럼 조금 더 있어야 피는 거예요?"

"응. 더 활짝 피기 위한 움츠리는 과정이야."

"어서 활짝 피면 좋겠어요. 그때도 선생님이랑 볼래요."

셋이 손 잡고 걷는 길이 정겹다.

셋의 이야기를 들은 목련이 통통거리는 귀여운 대화를 끌어안고 설레는 만개를 할 수 있길 기도한다.


돌고 돌아 봄이 온다.

강산이 변한다. 그 강산에 머무는 사람도 변한다.

꽝꽝 언 얼음처럼 단단히 닫혀 있던 마음의 도어록이 해제된다.

들뜨기도 하고 괜히 쓸쓸하기도 하다.

'봄을 탄다'라고 일컫는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기온에 햇빛의 촉감은 부드럽다. 연초록이 고개를 내밀어 본인이 왔음을 알린다.

"저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며 살포시 나무 위에 얹어진다.

봄바람의 냄새가 난다. 포슬포슬한 빵냄새 같기도 하고 싱그러운 주방 세제 냄새 같기도 하다.

싸리문 냄새가 나는 겨울바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마음의 지진이 일렁인다.

그저 보통의 하루였던 풍경이 유난히 곱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따라 웃고 미소 짓는다.


외로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겨울잠을 잤던 감정들이 잠을 깨고 봄동과 함께 올라오니 쓸데없이 외로움도 한오라기 느껴본다.

새로운 도전장도 써보고 유난히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도 생긴다.

혹은 묵혀둔 추억들과 추억 속 기억으로 남은 이들의 이름도 조용히 불러본다. 그리고 떠올린다.

기억 저장소가 열리는 시간.

봄은 그렇게 나 홀로 진실게임을 하게 만든다.


자연스럽다.

무심한 세월의 강처럼 강산도 무심하게 변한다.

사람에게도 마음의 강이 있다. 너울거리는 강물처럼 변한다. 부서지기도 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흔들리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그 변화에 맞서지 않고 자연스럽게 파도에 몸을 맡기면 된다. 잠시만 멈춰 스스로를 마주하면 된다.

자연스럽다. 지극히 자연스럽다.


봄의 전언이다. 겨울을 지나오며 버거웠던 이내 마음을 다시 열어도 된다고.

그리고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고.


괜찮다.

다 괜찮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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