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 19호실로 가다.
‘치타델레(Zitadelle)’라는 독일어가 떠오른다.
요새(성채)’를 뜻하며, 특히 요새 안의 작은 보루처럼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작은 방어 구조를 가리킨다. 현대에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 내면을 돌보고 회복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시간이라 일컫기도 한다.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을 좋아한다.
'도리스 레싱'의 대표적인 단편이다.
겉보기에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성이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 수전 롤링스는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전은 점점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감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집과 가족을 위해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에 시달린다.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수전은 한 호텔의 19호실을 발견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그곳을 빌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 방은 그녀에게 오직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된다.
하지만 남편은 점점 수전의 이상 행동을 의심하고, 결국 그녀가 방을 빌린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를 외도나 정신적 문제로 오해한다. 수전은 자신이 쉴 수 있는 마지막 공간마저 침범당했다고 느낀다.
결국 수전은 다시 19호실로 향하고, 그곳에서 가스를 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위 두 가지는 요즘 현정에게 필요한 것이다.
고요한 것이 좋아 고립을 자처한다.
별거 아닌 공간 중 하나인 채팅방조차 피로감을 느낀다.
심심하면 한마디 툭, 말 걸면 한마디 툭,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대화했던 소통의 공간이 은은하고 묘하게 불편해졌다.
특정한 사람 때문이 아닌, 현정 본인의 문제다. 그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이슈도 이유도 없이 은은하게 사람을 피한다.
사람들마다 각각 인간관계를 내려놓는 이유가 다르다. 생채기를 남긴 사람이라 등을 돌리기도 하고 지쳐서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한다.
그런데 현정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다.
누가 밀어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한두 발짝 뒤로 물러난다.
관계를 끊고 싶다고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극단적인 판단과 행동이 머문 자리에는 늘 후회와 미련이 있었다.
희미해 보이지만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다.
현정은 본인에게 닥친 변화의 원인을 생각해 본다. 내성적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인간관계에 흥미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안테나가 높은 편이다.
즉, 관계의 균형 및 온도에 센서티브 하다.
지치고 무뎌지다가 참다 참다 화가 나서 더 조용히 물러난다.
이 굴레를 반복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정이 선택한 고립은 완숙한 단절이 아니다.
관계를 완전히 버리지도 않는다. 다만 늦을 뿐이다. 반응에 급급하지 않으며, 굳이 내 하루가 어땠거니 다 꺼내지 않는다.
시끌벅적했던 과거와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고요히 내려놓는다.
상처의 반복된 굴레가 본능적으로 페이스를 조절한다.
굳이 몇 음절로 정의를 내리자면 정리에 가깝다.
현정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명확히 그어보는 것이다. 누구든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도록 고요히 물러난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현정이 하고 싶은 말이 없을 리가 있나. 굳이 하지 않는 것이다.
말들을 덜어내고 덜어낸다.
본인의 장황한 설명이 때로는 타인에게 피로감을 주기도 하고 굳이 그리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배워간다.
소거를 거친 말은 차분함이 공존한다.
그 질서가,
그 흐트러짐 없는 상태가 좋다.
가끔은 외롭다. 아주 가끔.
스스로 선택한 고요에도 외로움은 공존한다.
하나를 손에 쥐면 하나는 놓아야 하는 이치를 알기에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이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가끔의 그 상태가 반갑고 재밌기도 하다.
분명하게 그은 선 뒤의 관계도는 더 또렷하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람이 좋다.
비가 오면 칼국수 한 그릇에 떠오르는 얼굴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단비를 적셔주는 사람이 좋다.
금세 흐려지는 사람이 걸러진다.
손틈 새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이모저모 걸러지는 것을 현정은 인생의 '배터리 교체 시기'라고 받아들인다.
스스로와 짱친이 된다.
타인의 시선 혹은 타인을 향한 시선을 거둔다.
단지, 나의 속도를 돌아본다.
현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예전보다 고요해질 뿐이다.
단지, 몇 걸음만 물러났을 뿐이다.
그어놓은 그 선이 누군가에게는 멀어 보일지언정.
이것은
현정의 치타델레이다.
이것은
현정의 19호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