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이 없으면 미친년이 됩니다.
'치타델레 현정씨, 오늘 점심에 수업 있나요?'
청아한 메시지 음이 울린다.
토끼다.
브런치에 올라간 글을 보고 연락한 것이다.
현정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번지고 피식하고 웃음이 터진다.
'토끼야, 오전에 수업 없어. 무슨 일이야?'
'아, 점심이나 한 끼 할까 해서. 갑자기 고기가 생각나네.'
'점심? 좋지!'
고기를 뜯고 싶은 토끼와 약속 시간을 정하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계를 들여다본다.
2시간 30분 정도의 애매한 시간이다.
뭘 해야 시간을 알차게 썼다고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유력한 후보로 운동이 떠오른다.
1시간 운동을 하고 씻고 나갈 준비를 마치면 2시간 정도 흘러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약속 장소까지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다.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이 끝난 현정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 카페인을 들이킨다.
커피가 목구멍을 강타하며 넘어가는 순간, 머릿속이 청소가 되는 기분을 느낀다.
"하... 살 것 같아."
혼잣말을 읊조리며 묵묵히 운동을 시작한다.
요즘은 커피가 없으면 미친 여자가 되는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 감각의 예민함이 더 솟구쳐서 쓸데없는 상황에 예민 지수가 올라갈 때가 있다.
그럴 때 임시방편으로 커피를 통해 급한 불을 끈다.
어떤 날은 평균적으로 먹는 양을 넘어서서 잠들기 전까지 심장이 쿵쿵거리곤 했다.
안다.
고쳐야 할 점이라는 걸.
안다.
줄여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게 쉬우면 이러고 있을까.
동네의 구멍가게 같은 파출소 앞에 토끼가 서 있다.
손을 높게 들어 인사한 뒤 횡단보도를 건넌다.
"현정아, 좀 웃고 다녀.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어!"
토끼의 말에 화들짝 놀란다.
"내가 인상을 쓰고 있었어?"
"응! 미간에 주름을 긋고 이렇게 인상 쓰고 있더라."
토끼가 현정의 표정을 따라 한다.
"나도 모르게 그러나 봐. 요즘 좀 예민한 것 같긴 해.
너도 알다시피 스트레스받는 일도 이모저모 있었고..."
"게다가 일도 늘었잖아! 난 네가 걱정돼. 끼니 챙길 시간도 없을뿐더러 늘 커피만 입에 달고 살잖아."
"응. 안 그래도 집에서도 한 잔 마시고 왔어. 요즘 커피가 안 들어가면 미친년이 되는 것 같아. 말 그대로 미친년."
토끼는 미친년이라는 표현에 키득키득 거린다.
미친년.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다.
카페인 없는 삶을 살게 된다면 저 이름이 제일 적합할 것이다.
카페인의 노예가 된 현대인의 삶.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행복했던 때가 있다. 그때, 아침이 찾아오는 것은 행복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하늘부터 봤던 예전과 달리 알람을 끄기 급급하다.
알람 의식이 끝나면 '정상 인간 범주' 모드로 진입하기 위해 물약을 마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카페인이다.
일종의 기동 장치를 갖춘 뒤 '오늘'이라는 전쟁을 시작한다.
현정은 늘 시간을 쪼갠다.
비는 시간을 두는 법이 없다.
그런 현정에게 카페인은 일종의 효율적 상징이다.
더 빨리, 더 오래, 더 많은 과업을 해내기 위해 카페인을 찾는다.
흥미롭다.
노예를 자처한다.
마치 습관처럼.
일종의 생존 수단인 커피는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언제 한 번 커피 한 잔 하자!'라는 표현이 왜 나왔겠는가. 선택의 여지없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카페인이라는 가면을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구조다. 현대인의 삶이 그러하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잇따른 수면 부족,
넘실거리는 정보 속 늘어나는 위시들.
카페인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된다.
커피를 마신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가.
왜 이렇게까지 치열해야만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한 잔 들이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