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신이 잠시 소리를 거두었다.

by Seriel J

스산한 바람을 뚫고 어김없는 새벽이 찾아온다.
침대에 누워 캄캄한 어둠 속 마주하는 천장을 본다.
천장도 현정을 보고 현정도 천장을 본다.
하나의 대결 구도를 맺듯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삐ㅡ
우웅ㅡ
오른쪽 귀의 전쟁이 시작됐다.
총과 칼은 없는 소리의 전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은 아침마다 현정을 괴롭게 만든다.
"하... 귀 아파."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진공청소기 소리는 하루 종일 현정을 따라다닌다.
사람들의 말소리나 외부에서 나는 소리들은 웅웅 거리며 잘 들리지 않는다.

현정은 인간관계가 버거운 사람이다.
현정의 울타리는 담장의 높이가 높다.
쉽게 들이지도 쉽게 내보내지도 않는다.
조심스레 품고 귀히 아껴준다.
그래서 상처받는 일이 생기면 많이 다치고 쓰라림에 아파한다.
한참 안테나를 세워 곤두서 있을 때 돌발성 난청은 천천히, 슬금슬금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현정을 끌어안고 뱀이 먹이를 품듯 조여왔다.

"현정아, 잘 안 들려? 괜찮아?"
은정은 오늘도 현정이 걱정된다.
얼굴에는 '예민'이라는 두 글자를 떡하니 쓰고 툭하면 아픈 현정이 자꾸 신경 쓰인다.
'언니는 전생에 나랑 무슨 사이였길래 이렇게 손 많이 가는 동생이 생겼을까?'
현정은 은정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사람이 잘 살려면 역치가 높아야 하는데 현정은 낮은 역치를 손에 쥐고 태산 같은 역치인 척한다.
그래서 늘 탈이 나고 병이 난다.
신이 존재하여 현정을 빚었다면, 일부러 잠시 소리를 껐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에 감사함과 쓰라림이 공존한다.
자발적 고립 상태였던 현정은 듣지 못하는 현재가 점점 본인을 동굴로 파고들게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이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는 짙은 외로움이다.
스스로 외로움의 문턱을 넘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다.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다.

'당신은 왜 또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가?'
'당신은 왜 또 하필 지금 이런 시련을 주는가?'
'당신은 나라는 그릇을 어찌 사용하려고 이토록 고달프게 만드는 것인가?'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하악질을 한다.
귀머거리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세상에 넘실거리는 것이 소리다.
"현정아, 너 걔 믿지 마. 걔가 뒤에서 무슨 말을 흘리는지 알아?"
믿었던 이는 뱀의 혀로 난도질을 한다.
그는 비난한다.
그녀는 상처 주는 말을 한다.
이곳은 의미 없는 잡음들이 공간을 메운다.
저곳은 그저 침묵하는 곳간이다.
쉴 틈 없이 부도덕한 세상 속 현정이 가여웠을까.
그리하여 잠시 보호하십사 소리를 끈 것일까.

자연스레 템포가 느려졌다.
이유 없이 한 박자 늦고 싶었던 회신들.
한두 박자 늦어도 진실된 사랑을 하는 이들은 이유가 있겠거니 묵묵히 현정을 기다려준다.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서운함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혼자 남겨졌다. 오히려 좋았다.
이건 현정 본인을 위한 여행이 될 것 같았기에.
현정은 인생을 위한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아, 나는 이럴 때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내게 이런 눈빛도 있구나!'
'민망하거나 긴장할 때 손짓 하나하나 감정을 담는구나!'
본인을 알아차리는 감각이 생긴다.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이제야 스스로와 친구가 된다.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내면의 소리였기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끌어안는다.
숨을 쉬기 위해 스스로를 사랑해 본다.

이제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삶.
수많은 배반과 상처를 내친다.
지금까지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살았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듣고도 모른척했던 나의 목소리.
나를 희생하고 좀 더 타인을 위해 살았다.
들리지 않는 결핍은 현정에게 귀한 선물의 시간이 되었다.

'당신은 왜 또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가?'
'당신은 왜 또 하필 지금 이런 시련을 주는가?'
'당신은 나라는 그릇을 어찌 사용하려고 이토록 고달프게 만드는 것인가?'
이 질문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다.
오히려 빛 앞으로 이끌었다.

삶은 늘 대답이 없다.
답은 늘 우리 스스로 쥐고 있다.
들리지 않는 침묵 속, 인생의 여행자가 되어 의미를 찾듯. 답은 늘 우리에게 있다.

어쩌면 빛 앞으로 가기 위한 배반과 멸망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전쟁.
침묵 속의 결핍은 하나의 선택지를 만들었다.
고요한 여행자는 읊조린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귀머거리의 여행을 인내해 주는 모든 이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속도는 느릴지언정 완숙한 성숙으로 다시 가겠다.

당신들의
그 기다림이 캐캐 묵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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