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방

가방에 남은 단내

by Seriel J

"현정이 주려고 가져왔어!"
세월은 미화에게만 거슬러 올라가는가. 소녀의 얼굴을 하고 두 손을 내민다.
그녀의 손 위에는 단내를 풍기는 사탕들이 소복하다.
발그레한 볼은 햇빛을 받아 선명해졌고
갈빛 눈동자는 더욱 투명해졌다.
"이게 뭐야?"
"중국 사탕이야. 현정이만 주려고 들고 왔어."
왜 때문이었을까?
'예쁘다'라는 표현은 이런 모습을 보고 만들어진 말이었을까?
순간적으로 이 생각이 머리를 강타한다.
친구를 위해 꼬깃꼬깃 사탕을 꺼내 두 손에 얹은 그녀의 모습이 빛에 반사되어 예쁘고 소소함에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는 마음의 여유가 예쁘다.
"우와! 나만 위한 선물이네?"
미화는 하얀 미소를 짓는다.
미화는 중국에서 온 친구라서 한국말이 한국인처럼 매끈하진 못하다. 하지만 문법적인 표현이나 관용적인 표현은 완숙하다.

바닷소리가 영롱한 식탁에 나란히 앉는다.
"현정, 바다 너무 예뻐!"
"응! 게다가 이 위치가 명당이라서 꼭 너를 데려오고 싶었어!"
보글보글 야채가 끓는 소리가 식탁을 메운다.
"현정! 이건 샤브샤브야?"
"맞아. 뜨거운 육수에 야채와 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건져 먹다 보면 어느덧 육수만 남아있을 거야. 그때 칼국수를 넣어서 호로록 먹고 마지막은 죽을 먹는 거지!"
"현정, 맛집 잘 찾아!"
"예전에 맛집 기록을 남겨뒀어. 유명한 곳도 다녀오고 나서 평가도 해보고."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 것도 현정이랑 어울려."
"정말? 고마워. 우리 맛있는 거 많이 먹으러 다니자."
"좋아! 저 그런 거 좋아해요."
"좋아하는구나! 나중에 양꼬치도 먹으러 가자!"
"좋아요!"
현정은 토끼와 양꼬치를 먹은 뒤 머릿속이 온통 양꼬치로 가득하다. 토끼와의 추억에 미화도 살포시 얹고 싶다.
"야음동 쪽에 중국 식당 많아요. 거기도 함께 가요."
"그 동네에 그런 곳이 있었어?"
"네. 정말 맛있어요. 다음에 가요."
반말과 높임말의 경계를 요리조리 넘는 그녀가 참 귀엽다.

현정과 미화는 유년 시절의 상처가 비슷하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손에 꼭 쥐고 조금씩 조금씩 떼어 내고 있다.
저도 답답하고 슬플 텐데 그녀는 현정을 위로하기 바쁘다.
"현정, 마음의 쓰레기는 버려야 해. 집에만 있고 자꾸 혼자 있으면 쓰레기 못 버려요."
"네 말이 맞아. 오늘 그냥 나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나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드라이브도 하니까 기분이 정말 좋아졌어."
"맞아요. 현정, 잘했어요."
오후 2시의 햇빛은 유난히 드높고 따뜻하다.
마치 그 빛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집으로 돌아온 현정은 가방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열어본다.
가방의 단내가 달콤했을까.
친구의 사랑이 달콤했을까.
그 사랑이 온온해 하루가 온온해졌다.

사람을 덜어낸 자리는 누군가를 맞이하려고 비워지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이 비워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이시라. 더 큰 폭풍을 막기 위한 자연의 이치다.
오히려 개운하다 여기고 설렘을 가지시라.
인연이 떠나야 새로운 인연의 자리가 생긴다.

현정은 오늘 새 친구의 방을 짓는다.
'나의 첫 중국 친구, 미화'
라고 이름 짓는다.

언제가 꼭 순례길을 밟아보겠노라.
현정의 방에 외국 친구들의 방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는 그날을 위해.
이현정,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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