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끝은 부관참시다.
스크린의 막이 내린다.
현정이 동아줄처럼 쥐고 있던 담요가 축축하다.
현정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몸은 망부석이 되었다.
재호가 현정을 바라본다.
"계속 앉아있게?"
"여운이 남아서 일어나지 못하겠어."
"참내, 너는 뭐가 그리 슬퍼서 영화 보는 내내 대성통곡을 하냐."
"아는 만큼 보이고 느껴졌나 봐. 단종이 얼마나 가여운 존재였는지 알고 있어서 더 슬펐어."
재호가 현정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재호는 현정이 신기하다. 신기함 속에 귀여움이 싹튼다.
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으로 귀여움을 표현한다.
영화관을 나오는 내내 현정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니 재호가 툭툭 치며 "그만 울어. 다 너만 봐."라고 이야기한다.
현정이 재호의 팔에 기대 얼굴을 파묻는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나뉜다. 사실은 기록된다. 기록은 남겨진다.
남겨진 것은 지울 수 없다.
어떻게서든 지울 수는 있겠으나 땅이 알고 하늘이 안다. 역사의 이면에는 울분이 존재한다.
단종.
철저하게 외로웠던 당신의 삶.
자의가 존재할 수 없었던 어린 군주의 숙명.
'왕'이라는 이름조차 놓을 듯 말 듯 불안에 떨며 지냈던 당신의 시간들.
비극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참혹해지는지 볼 수 있었던 그날의 비극.
권력은 뱀이요, 마약이요, 멸망이다.
차가운 촉각의 비늘이 미끄러지듯 몸을 감싸 열을 식혀준다.
냉기 도는 쾌락의 방은 송곳니를 드러낸다.
피로 쓰고 피가 기록될 운명.
신의라는 명분 하에 반윤리를 선언한다.
그것이 권력이다.
경서에도 옛뱀이 있고 현 뱀이 있듯 옛 한명회가 오늘날도 존재한다.
그가 쥐는 모든 것들은 도구가 된다.
도구들은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파도를 만든다.
새치 혀는 파도에 비바람을 불러일으켜 거센 소용돌이를 만든다.
생존해야 한다.
생존을 넘어 선두에 서야 한다.
그 욕심은 또 다른 파도를 설계한다.
어제는 사람이 삼켜지고 오늘은 영혼이 삼켜진다.
내일은 윤리가 삼켜진다.
지진이 정교해봤자 얼마나 정교하리.
지진은 지진이다.
균열을 먹을 수 없다.
훔친 도자기를 아무리 갈고닦고 또 닦으면 무엇하리.
훔쳤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림자는 따라가다 보면 실체가 드러난다.
배도의 연쇄. 그리고 죽음이라는 멸망.
재가 되어버린 운구에 꽃을 꽂아 향을 맡는 꼴이다.
욕망이 뱀을 품는 순간 스스로를 태운다.
뱀은 요리조리 미끄러지며 사람을 향해 눈을 희번떡이며 이빨을 드러낸다. 독을 뿌린다.
욕망이 멀게 한 눈은 독을 품고 쓰러지는 이들을 즈려밟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비열한 혀를 날름거리며 더 뜯어먹을 것이 없는지 긴 혀로 애무를 한다.
하하하.
역사는 사실로서 기록된다.
당신들이 갇힌 쾌락의 방에 희생된 사람들이 그냥 흘러갈지 알았쏘냐.
땅이 안다.
하늘이 안다.
그리고 시간이 기억한다.
비극은 반드시 부관참시된다.
잊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