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의 방

트루먼 쇼: 행복하지 않아도 돼. 진실을 마주했으니까.

by Seriel J

그날은 이상했어. 참말로 이상했어.
어김없이 스산한 새벽 공기와 입 맞추며 잠을 깼지. 캄캄한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더 잘지, 잠을 깰지 고민하다가
'에이, 그냥 일어나서 하루를 열자!'라고 씩씩하게 이불을 박찼지.
그날은 이상하게 잠도 빨리 달아났어.
가벼워진 눈꺼풀에 힘을 주고 시큼한 레몬즙에 따뜻한 물을 따라 휘휘 저어 원샷을 했어.
레몬이 온몸을 구석구석 깨워주더라.
커피를 들고 다시금 앉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편지를 썼어.
그런데 이상하게 글도 잘 써지는 거야.
쭉쭉 내려가는 거야.
마치 오늘처럼.
기분이 날아갈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도 해보고 혼자 실없이 웃기도 하고.
그날은 뭔가 다 잘 될 것만 같았어.

하나의 트루먼 쇼인 줄은 모르고.
너 '트루먼 쇼'라는 영화 알아?
아, 모르는구나! 내가 설명해 줄게.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야.
음, 그는 그냥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거대한 쇼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그의 인생은 TV 리얼리티 쇼였지.
그가 거주하는 집, 동네, 회사 모두 세트이고 그를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은 배우들이야.
그만 몰라. 가짜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삶 자체가 거대한 방송 스튜디오인거지.
더 소름 끼치는 건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삶을 시청하고 있어.
트루먼만 몰라. 그러나 나중에 진실을 알게 돼.
스스로 진실을 터득하고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해.

넌 어떤 것 같아?
만약, 너를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가 거짓이었다 상상해 봐.
과연, 너는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내가 참 이상했다고 말한 날 있지?
그날은 내가 트루먼이 되는 날이었어.
이상하게 그날, 기분이 참 좋았는데 기분과는 별개로 머릿속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어.
어쩌긴. 겁이 난다 하여 진실을 회피할 수는 없지.
나는 돌파했어.
오히려 돌파해서 진실을 마주하기 전이 힘들었지 막상 마주하니 별거 아니더라.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드러누워서 아이처럼 울면 뭐 해. 진실은 변하지 않을 텐데.
그냥 받아들였어. 그리고 생각했어.
영화 속 트루먼도 나와 비슷했을 거야.

'너 이제 어떻게 할래? 어떻게 살아갈래?'
질문하고 또 질문했어.

예전에는 말이야. 내 마음이 무너지면 세상도 함께 무너졌어.
음, 그런데 이제는 아니더라고.
상실감이 있다는 건, 상실감만큼의 성취감도 온다는 신호탄이더라고.
그래서 신호탄을 들었으니 파도가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려보는 중이야.
예전에는 타인이 다 해결해 줄 것만 같았어.
혹시 너도 타인에게 의지하고 있다면 그러지 말어.
가만히 있지도 말아.
파도가 거셀 때는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 돼.
난 나에게 좀 더 집중했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했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사람을 너무 많이 사랑하지 마.
세상 자체를 너무 아름답게 보지 마.

네가 사람을 너무 많이 사랑하거나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만 보면

너를 잃어.
너를 잃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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