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의 선언:업보는 존재한다. 다만, 시차가 있을 뿐.
"나는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싫더라."
"왜? 뭔데 그래?"
"힘든 일이 생겨서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누구나 다 상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지. 그런데 타이밍이라는 게 있잖아. 저런 말은 굳이 안 해도 될 타이밍이야."
채은은 고개를 끄덕인다.
적지 않게 공감하는 바이다.
채은은 본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상처가 많은 만큼 경계 또한 많다. 징그럽게 들러붙은 상처는 치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치유될 때쯤 맥이 끊기고 흐름이 끊긴다. 혹은 새로운 상처가 덧대어진다.
재현의 눈에 보인 채은의 균열.
재현은 채은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덕지덕지 붙은 외로움과 불안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되어 거울 속에 비친다.
재현은 그녀의 연약함을 손에 쥔다.
"채은, 슬퍼하지 마. 내가 너의 길잡이가 되어 줄 거야."
목적지는 정해졌다.
재현은 그곳을 향해 등불을 켜고 항해 준비를 마친다.
공감은 채은을 열었다.
등불은 켜졌고 배는 띄워졌다.
그 배는 '자유'라는 글자를 사뿐히 지나쳤다.
재현은 황급히 채은의 시선을 돌린다.
미지의 세계를 항해할 생각에 들뜬 채은의 볼은 발그레졌다.
강을 건넜다.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막연한 불안함도 함께 강을 건넜다.
파도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서 희미해져 가는 불빛을 바라본다.
“다 잘될 거야.”
“다 괜찮을 거야."
떠나버린 사공들, 목소리들의 바람이 분다.
파도에 두 발을 딛고 외친다.
"그 배는 침몰하고 있어."
상처는 닮아 있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상처의 완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지요. 아니지요.
시간이라는 이불을 덮고 받아들이고 이해를 해볼 뿐 사라지지 않는다. 실체가 사라질 수 없기에 완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치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이가 있던가.
아닐세. 아닐세.
진정한 돌봄은 그런 것이 아닐세.
그것은 그저 온온하게 일상에 머물러주는 것이다.
상처를 이용하는 악을 가까이하지 마시라.
그로 말미암은 배신은 캄캄한 고립의 골을 만든다.
당신은 누구인가.
친구의 상처에
손을 내미는 사람인가?
어딘가로 끌고 가는 사람인가?
기억하시라.
업보는 존재한다.
다만, 시차가 있을 뿐.
오늘 상처를 주었는가?
매일 뜨는 태양이
매일 지는 태양이
두려워질 것이다.
내일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