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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Apr 01. 2022

봄날의 일기

봄나물 캐는  낭만을 즐기다

   


    어린아이들 삼삼오오 들녘으로 바구니 들고 냉이와 달래를 캐러 가던 유년 시절의 추억은 너무나 선명하게 가슴 밑바닥에 박혀 눈을 감으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벽화처럼  내 눈앞에 그려진다.


냉이를 캐던  논과 밭


   그러나 그 시절 부모님은 아이들의 들녘 놀이에 못 가게  하시고 난 그 일에 늘 불만이었다.  찬 바람에  손이 튼다고 하셨으나 난 그 일이 신경도 쓰이지 않는 하찮은 일에 불과했기에 먼저 나간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어쩌다 몰래 참가하곤 했으니 나에게 나물 캐는 일은 로망임이 분명했다. 친구들이 캐 온 바구니를 쳐다만 보는 일은 눈물이 날 만큼 속상한 일이다. 나의 유년 시절의 즐거움은 그런 식으로 빼앗긴 것이다. 그  시절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는 봄나물 중 더 귀하게 느껴진 냉이보다  달래였지만 그것은 더 발견하기 어려웠다. 가늘게 삐죽 솟아 나온 달래는 거의 보물 같은 그런 존재였기에 아이들은 달래를 발견했을 때  환호를  지르며 다 같이 모여들었다.  보리밭에서 보리 이삭을 주웠던 기억과 함께 생각하면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의 놀이는 단순한 유희만이 아닌 수확의 기쁨이  함께  하는  풍요로움이  있었다.


   중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30년을 재직했던 오빠는 괴산에서 농가를 임대하여 작은 텃밭에 상추, 고추, 파 등을 심어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 주고, 월남 닭이라는 투계도 키우고 있다. 괴산과 집을 오가며 자신의 노후를 즐기며 살고 있는데 작년에 냉이 얘기를 하니 냉이 많은  곳을 발견했다고 오라고 했다. 얼마나 많이 있던지 삽으로 캐야 했으니 내가 생각하는 냉이 캐기와는 달랐다. 그래서 올 해는 겨울부터  진짜 냉이를 캘 곳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 드디어 지난 일요일에 괴산에 가서 냉이 는 일을  해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사 먹는 냉이는 야생의 냉이가 아니라서 향도 덜하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직접 캐보니  향긋한 향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어린 시절의 냄새가 코로 전해진 느낌이었다.


  냉이로서는  언 땅을 견디고 나와 기지개를 켰는데 우리 손에 뽑혔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냉이의 여리고 풋풋함에 맛을 상상하며 매우 기대에 부풀었다. '자연의 섭리'라는 말 정도로 냉이에게 양해를 구할 일이기는 하다. 눈앞에 그 많은 냉이를 약간만 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냉이를 배려함은 아니었고 냉이 캐는 일이 낭만이 아니고 고행이었던 때문이다. 긴 시간 허리를 구부리고 쭈그려 앉아 나물 캐는 일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다.  봄처녀  나들이처럼 들뜨며 설렜던 봄나물 캐기는 '어구 구' 소리 남발하며 끝났다.


  이날 저녁 요리는 냉잇국, 냉이 전, 냉이 튀김  등 냉이 요리가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봄나물 캐기는 유년 시절의 벽화의 마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시야에 논밭, 따뜻한 마음까지 더해서 추억으로 저장해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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