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혜숙 Mar 09. 2022

봄과 청춘

화려한 봄의 축복이 무감한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눈을 들면 여기저기 화려한 꽃의 향연, 봄날의 축복이 펼쳐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개량된 꽃들은 다채롭고 더욱 화려하게 진화하고 있다. 강렬해서 눈을 뗄 수 없는 찬란함 앞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


   베란다의 꽃들이 한 개 두 개 피어날 때마다 가족들을 불러댄다.  꽃이 피었으니 어서 와서 보라고.  그런데 그때마다 보이는 반응은 매번 기대 이하다. 맞장구를 해주나 왠지 형식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때마다 서운한 느낌보다는 내가 누리는 호사가  미안하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사진:베란다에 피어 있는 봄꽃들


   세상사는 일이 힘들다고 직장 새내기인 딸과 아들이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말한다.


   그네들에게도 사회생활은 시작되었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 나날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무언가 될 것이고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고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접한 현실은 자신의 존중조차  없는 냉혹함으로 다가왔고, 인간미를 기대할 수 없는 기계적인 업무로 맺어진 인간관계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 그 어느 곳에 그렇지 않은 직장도 있기는 할 것이나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그런 곳으로 여겨질 수 없는 것이 갈등의 시작인 것이다. 그런 인간 관계도 힘든데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도 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혼도, 승진도, 연봉도, 백세 인생도 모든 것이 중압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어두운 현실 앞에서 젊은이들은 도약을 꿈꾸면서 다가올 미래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런 그들에게 펼쳐진 봄이라는 신천지는 찬란함이 무색하리만큼 그림의 떡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그림의 떡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기도 하고  먹고 싶기도 한 그런 것으로 느껴질 텐데  현실에 대한 중압감으로  자연으로 향한 눈조차 어두워져 무관심하게 된 것이리라.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를  펴고 새싹들이 땅 위로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해도 눈길이 닿지를 않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젊은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미래가 탄탄대로라서, 금수저라서 여러 가지 이유로 여유로운 인생도 있을 것이나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도 출산도 미루고 있는 현실이다.


     옛날 어른들이 꽃을 좋아하면 나이 든 증거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꽃으로 여겨져 꽃이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과 무관하게 젊음 자체가 꽃과 자연에 덜 관심이 가는 세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퇴근길에 들려주는 얘기들 속에  삶이 쉽지 않다는 말들이 가슴속에 박히기도 해 꽃에 탄성을 지르는 내가 좀 부끄러울 때도 있다.  물론 나도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산 적이 있겠지만 이제는 치열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내가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것은 권리이기도 하고, 자유이기도 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런 것조차 누릴 수 없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감탄만 하기도, 순수하게만 탄성을 지르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다.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 좀 여유 있게 살아도 된다고, 너무 결과에 얽매이지 말고 좋은 것 하면서 아름다움도 감상할 순간을 즐기라고 어른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이 참 아름답고 살만한 거라고 이 봄에 큰 소리로 응원하면서 박수도 쳐주고 싶다. 이 꽃들이 땅속에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싹을 틔우고 피어났기에 아름다운 거라고. 우리도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서로 기대어 살아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명동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