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는 보통의 리더들이 괜시리 외롭거나 괴롭지 않길
2025년 1월 문득, 내가 16년째 회사원으로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여섯의 겨울에 큰 그룹의 작은 계열사 홍보팀에 입사하여 4년, 좋은 인연으로 옮겨간 그룹 연수원에서 9년, 지금 몸 담고 있는 판교의 IT 기업에서 또 3년. 내가 경험한 홍보와 HRD 업무는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타인의 이야기, 사업 현황, 각종 이론과 사례 등)가 '나(때로는 동료)'라는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어떠한 '스토리'가 되고, 스피커(내가 아닌 경우도 있다)를 통해 타인에서 전달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너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교차하는 지점에 천직이 있다(이게 플라톤인지..소크라테스인지..)"는 말이 있다.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운 좋겠도 아직까지는 이 재주를 돈으로 사주는 회사들이 있었기에,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돈은 좀 더 많이 벌면 좋겠지만...)
2025년 1월, 그동안 묵혀놨던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의 한 가지였던 브런치 쓰기를 시작했다.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15년이나 한 가지? 일을 했으면 이제는 뭔가 기록할 만한 나만의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어설픈 자신감의 발현인 동시에 이제는 어딘가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자꾸 잊고 마는 나이가 되었다는 서글픈 현실 인식 때문이다.
내가 이 공간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큰 범주에서는 리더십과 조직문화다. 너무나 뻔한.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1년에 이 주제로 5,000권이 넘는 책이 출판될 정도로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주제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까지 한 마디 더하는 이유는 이 주제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그 의도와는 달리 현업의 리더들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많은 경우, 사회생활의 첫 시작은 리더가 아니다. 누군가 다른 리더의 휘하(요즘은 아래라고 쓰면 안 되긴 하지만..)에서 맡은 바 일을 peer 그룹보다 조금 더 잘하고 조금 더 성실해서 능력이 좋다고 인정받은 한 회사원이 시간이 지나 많은 경험을 쌓고, 몇 차례의 성공과 작은 실패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 조직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10명 정도의 회사원이 있으면 그중 1명은 리더라고 불린다. 평균보다는 당연히 잘했던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리더가 되는 순간 지향점은 '위대한 리더'의 그것이 된다. (아니면 '위대한 조직문화를 가진 이름만 아는 어떤 회사'의 리더이거나)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향수"라는 표현을 접하고 참 놀랍도록 신선하다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리더십 담론에 대한 불편함을 이 표현을 빌어 표현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대한 추종"이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 각색된 어떤 회사와 누구들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하루하루 얼굴을 맞대는 현장의 리더들을 판단하고 옥죄고 있는 것 같다.
겪을 수 없고 각색된 리더십과 조직문화는 대개 아래와 같은 소재들로 시작한다.
-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서 산업보국의 기치로 회사를 만들어내 결국 글로벌 기업을 일군 불굴의 기업가들
- 혁신의 메카, 실리콘벨리에서 번쩍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으로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든 누구누구들
- 장인 정신이라 불릴 정도로 특유의 가치관과 철학에 천착하여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들
-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와는 너무나 다른 판단력과 과감한 행보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누구들
그리고 능력과 인격 면에서 결함이 없는 '슈퍼맨' 리더가 되기 위해 개인 차원에서 끝없이 학습하고 수양하고 조직에 헌신하고 구성원을 성장시키고 늘 솔선수범하라고 끝난다. 리더를 하기 싫은 일, 할 수 없는 일로 만들어놓고는 리더십 포비아 같은 자극적인 말로 혀를 차며 방관한다. 그래서 리더의 일은 괴롭고, 리더는 외로워진다.
첫 글의 제목을 리더십 판타지로 삼은 이유다. 앞으로는 내가 보고 듣고 읽고 생각했던 것들을 판타지와 현실로 구분하며 적어보려 한다. 전문성과 식견이나 자격은 없지만, 개인 블로그라 생각하고 두서없이 적어볼 예정이다. 모든 정보의 출처를 모두 다 기억하고 촘촘히 적으면 좋겠지만,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기에 메모해두지 못했고 기억하지도 못한다.(물론, 최대한 생각이 나면 어떤 형태로든 나의 생각과 정보를 분리 서술해 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아직 현직 회사원이고 앞으로도 오래 다닐 생각이기에, 조직에서의 경험은 최대한 어떤 회사인지 티 나지 않게 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