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여신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레미제라블>(2012)에 대하여

by 이주미

I. 서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주의가 만연했다. 파병된 남성 대신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했는데, 귀국한 군인에게 이들은 또 다른 위협이었다. 뮤지컬은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음으로써 요구에 맞게 제작되었다. 여성은 가정으로 돌아가 전업주부가 되고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행복한 결말로 제시하면서 기존의 사회적 관습과 전통을 강조했다. 그래서 뮤지컬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성 역할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영화도 대부분 남성 시각에서 만들어져 왔다. 여성은 남성 주인공이 욕망하는 대상이 되거나 여성끼리 질투하거나 모성에 사로잡힌 캐릭터로 남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런 영화계에서, 뮤지컬 영화는 내러티브 관습에 저항한다고 평가받았다. 뮤지컬 영화란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이야기 사이에 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영화 장르이다. 장르 특성상 노래와 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단순해지고 남성 시각이 담길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은 원작 소설보다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키움으로써 주목받았다. <그림 1>은 원작 『레 미제라블』(1862)의 일부 모티브가 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작품의 가운데에 있는 여성은 자유를 상징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여성 캐릭터는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서 여성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다. 이 글에서는 <레미제라블>에서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분석하고, 이 영화가 관습에서 벗어났는지를 알아보려 한다.



Ⅱ. 민중의 여신은 어디에 있는가


1. 작품 소개

<레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으로부터 26~43년이 지난 6월 봉기 시기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이다. 주인공 ‘장발장’은 전과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박해당하다 한 신부에게 구원받는다. 새로운 삶을 결심한 그는 마들렌이란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판틴’을 만난다. 그녀는 장발장에게 딸 ‘코제트’를 부탁하고 사망한다. 이 영화는 장발장이 코제트를 위해 헌신하고 이전의 죄에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동명 뮤지컬을 영화화한 것이다. 둘 다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가난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에서 비참하게 고통받은 여인들이 적극적으로 생존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위고 작가는 장발장을 통해 증오를 버리고 타인을 사랑하며 헌신하라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2. 최선을 다하는 태도

장발장은 사회에서 갖은 편견에 시달렸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직함으로 속죄를 구한다. 그는 끝내 판틴과 코제트에게 용서받아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장발장이 성공함으로써, <레미제라블>은 성공을 전제하던 뮤지컬의 관습을 이어받았다. 그렇다면 그와 연관됐던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전형적이었을까.

첫 번째는 공장 노동자 판틴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사귀어 아이를 가졌지만, 남자가 도망간 탓에 홀로 아이를 키웠다. 장발장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하던 중, 동료들에 의해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하루아침에 공장에서 쫓겨난다. 이후 판틴은 돈을 벌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생니를 뽑고 몸을 팔기도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부양하려는 의지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주체적인 모습이 돋보이는 캐릭터이다.

두 번째는 테나르디에 부부의 딸 ‘에포닌’이다. 에포닌은 짝사랑하는 친구 ‘마리우스’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였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첫눈에 서로에게 반했지만, 불운하게 헤어진다. 이에 에포닌은 마리우스가 행복하길 바라며 코제트가 남긴 편지를 전달한다. (<그림 4>) 그리고 <그림 5>에서 시위대와 정규군 사이에 총격전이 발발하자, 마리우스를 겨누는 총구를 끌어당겨 대신 맞고 생을 마감한다.

원작 소설에서의 에포닌은 마리우스를 사지로 유인하거나 코제트의 편지를 일부러 숨기는 등 질투심에 사로잡힌 캐릭터였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로 이동하면서 타인을 위해 목숨을 불사하는 캐릭터로 변모했다. 코제트의 편지는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이어지는 동시에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하러 떠나는 계기로 연결되기도 했다. 에포닌은 서사에 중요한 매개체를 담당한 캐릭터였다.



3. 깃발을 쥐지 않는 손

이 글은 판틴과 에포닌, 두 여성이 이런 행보를 보여줬음에도 관습을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고 여긴다. 먼저, 판틴이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진 장면이다. 다시 <그림 2>를 짚어보면, 여공들과 반장은 파랑 계열의 옷을 입었지만 판틴만 분홍색 옷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같은 무리였음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그림 6>에서 반장에게 판틴를 쫓아내라 종용하는 여공을 핸드헬드 카메라가 후퇴하며 촬영했다. 판틴의 심정에 동기화한 듯한 카메라 움직임은 불안감을 강조하고, 판틴과 여공 사이에 대립 구도를 생성한다.

다음으로, 판틴이 공장에서 쫓겨난 뒤의 장면이다. <그림 3>를 딸을 위한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있는 장소를 주목해야 한다. <그림 7>은 영화 초반에 신부에게 구원받은 장발장이 달라지길 결심한 장면이다. 그는 밝은 언덕을 올랐지만, 판틴은 계단을 내려가 밑바닥에 이른다. 그녀가 계단을 오르려 할 때마다 사람들이 막는 모습도 보인다. 이것을 통해 그녀의 처지는 적극적인 선택보다 불가피한 강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에포닌도 아쉬운 결말을 맞은 캐릭터이다. <그림 8>에서 마리우스 일행(시위대)이 시위를 벌이고 마차 위에서 깃발을 흔든다. 주요 인물이 깃발을 잡은 모습과 깃발이 어떤 사상이나 목적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이는 점을 통해, <그림 9>을 깊게 분석할 수 있다. 영화 마지막에는 사망한 캐릭터들이 거대한 바리케이드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양한 인물이 프랑스 국기를 흔들지만, 마리우스를 구한 에포닌은 국기를 쥐지 못했다.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옆의 남성 캐릭터가 대신 국기를 쥔 모습이 더욱 대조적이다. 이는 영화 전체에서 에포닌의 역할이 마리우스의 조력자로 한정됐음을 뜻하기도 한다.



Ⅲ. 결론

장발장은 끝까지 타인에게 헌신하고 원하는 바를 이룸으로써 위고 작가가 전하려던 바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성장했다. 하지만 판틴과 에포닌은 남성 캐릭터가 변화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캐릭터로 그쳤다. 이것은 뮤지컬 영화가 복잡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어려운 장르이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를 희생시켜 개연성을 추구한 것으로 추측한다.

여성 캐릭터가 남성 주인공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마치면서,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영화로서 남성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랑하며 헌신하는’ 메시지 또한 남성에게 이어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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