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로 할 때 잘하자잉
해가 쨍쨍, 빨래가 잘 마를 것 같은 날, 오늘도 보통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후에, 태권도 학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고 들어오는 아이들. 바로 씻으면 얼마나 개운할까 싶은데, 아이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기 직전까지 씻는 것을 미룬다. 나도 할 게 많다는 핑계로 두고 보고만 있다가, 결국 밤 9시가 임박해서야 소리치고 만다.
"이제 잘 시간이니 빨리 장난감 정리하고 씻고 자"
아이들의 대답은 이렇다.
"어~그래."라는 딸.
"싫어."라는 아들.
저렇게 말하고 계속 둘이 논다. 황당하다. 유아기도 아니고, 사춘기도 아니고. 뭘까?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빨리 자야 면역력도 좋아지고, 키도 크지."
"어~그래."
"싫어"
이렇게 실랑이하는 사이에 10시가 됐다.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강박이 생긴 나는, 협박을 시작한다.
"빨. 리. 씻. 으. 라. 고."
"씻. 지. 않. 으. 면. 스. 마. 트. 폰. 시. 간. 안. 줄. 거. 라. 고."
"다. 섯. 셀. 때. 까. 지. 씻. 으. 러. 들. 어. 가. 라. 고."
"하. 나. 둘. 셋..."
"어우, 엄마 너무해"라는 야유가 들려오지만, 옷을 벗고 샤워하러 들어간다.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 걸까 싶어 지겹다가도 협박이 통할 정도로 컸다는 사실에 아이러니하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협박은 해악을 고지하여 사람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이므로 이를 이해할 수 없는 유아, 정신병자, 만취자, 수면자 등은 이 죄의 객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정도라면 협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로 나의 행위는 협박이 될 수 없지.
오늘도 나의 어이없는 육아는 '협박죄'와 함께 살~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