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캠핑
“엄마, 오늘 몇요일이야?”
“응, 화요일.”
“에이~ 아직도 한참 남았네~.”
캠핑을 가기로 한 주말을 앞두고는 한주가 더디 간다.
막내가 달력을 볼 줄도 모르던 일곱 살 무렵에 우리집 캠핑이 시작됐다.
직장에 다니던 때였다. 여름 휴가 시즌에 예약 시기를 모두 놓쳐 버린 것이 계기였다.
대부분의 호텔과 펜션은 이미 만석. 갈 곳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캠핑용품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과 의자를 사서 가까운 휴양림으로 놀러 다녀도 괜찮겠다. 두고두고 쓰면 되니까’
그렇게 그해 여름 휴가비는 유명하다는 캠핑 브랜드에 투입되었다.
처음 장만한 나의 장비는 달랑 대형 접이식 테이블과 릴렉스 의자 네 개, 10여 년 전이었다.
“얘들아 다 왔다~!”
차만 타면 봄볕 아래 내놓은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다 왔다는 나의 목소리에 부스스 눈을 뜬다.
“와~! 캠핑장이다~!” 언제 졸았냐 싶게 모드 전환이 빠르다.
취학 전의 아이들이란 새끼강아지들 못지 않게 에너지 넘치는 시기니까.
하지만 엄마는 사정이 다르다. 주중엔 일터에서 100미터 달리기하듯 전력 질주하고 주말에는 빨래며 청소며 밀린 집안일을 전투적으로 하다가 오후쯤에는 완전히 방전되어 주말 집밥도 제대로 차려주지 못하는 사십 대 중반의 나이, 나는 분명 체력이 달리는 워킹맘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캠핑을 시작했단 말인가.
처음 두세번 캠핑을 함께 다니던 남편은 더 이상 캠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말의 업무 스케줄이 있는 데다 본래 좋지 않은 허리가 캠핑을 하고 나면 더 좋지 않단다. 키가 180이 넘는 그로서는 자주 허리를 구부리거나 머리를 숙여서 지나다녀야 하는 텐트라는 공간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몇 번의 캠핑을 치르면서 이미 캠핑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매력에 단단히 빠져들었던 터였다. 근무 중에도 틈만 나면 캠핑 장비를 검색했고, 늦은 밤까지 몇시간씩 각종 캠핑 까페며 캠핑 후기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이끌림과 열정, 내가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렇게 남편 없이 다니는 캠핑이 시작되었다.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 나가 사라져 버린다. 아 쫌, 의자라도 하나 옮겨주지. 철부지들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엄마 맘을 알 리가 없다. 하긴, 녀석들이 징징거리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냐,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제부터는 장비와의 씨름이다. 나의 첫 텐트는 가로 4미터, 세로 6미터에 높이 280미터의 대형 텐트였다. 나름 꼼꼼히 검색하고 신중히 선택했다고 여긴 초보 캠퍼는 가성비와 가비를 모두 만족시킬 텐트라 확신하며 겁도 없이 남자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텐트를 선택했다. 나는 알뜰한 여자니까, 이거 하나로 4계절을 버티리라.
3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텐트를 질질 끌다시피 옮기면서도 무거운 줄 몰랐다.
넓고도 넓은 텐트 스킨을 종종거리며 사방으로 펼쳐놓는다. 어디가 출입구고 어디가 창 쪽인지 구분될 정도로 펼친 다음에는 폴대를 끼워 넣어야 한다.
폴대 마디를 하나씩 체결하는 사이 바람이 휙 불어 바닥을 쓸고 지나간다. 펼쳐 놓은 텐트 스킨은 비닐처럼 바람을 잘 탄다. 텐트 스킨은 어느새 한쪽으로 찌그러져 있다. 나는 달려가 텐트 스킨을 잡고 다시 넓게 펼치는 작업을 한다. 바람은 마치 나와 장난이라도 치듯 몇 번이나 텐트 스킨을 날려버린다. 이쯤 되면 약이 바짝 오른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제법 큰 돌을 집어들고 와 텐트 스킨 위에 눌러둔다. 무거운 돌맹이를 드느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문득 생각한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한단 말인가!
텐트를 치는 일은 낯설고 힘들지만 의외로 성취감을 동반했다. 폴대를 끼우고 세워 둥글고 팽팽한 천장의 모양이 드러날 때, 모양이 잡힌 텐트의 각 모서리에 팩을 땅땅 때려 박으며 단단히 고정할 때면 나는 뭔가 좀 능력 있는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완성된 텐트를 한 발짝 떨어져 보면서
‘오오~ 이걸 내가 세웠다고?’ 남모를 뿌듯함을 누리기도 한다.
텐트를 세우고 나서도 아직 할 일이 태산이다. 매트와 전기장판과 침낭을 깔아 잠자리를 꾸미고 의자와 테이블을 펼치고, 수납 가구를 펼쳐 주방 용품을 정리하고..... 아이들이 있는 살림을 혼자서 세팅하는 까닭에 캠핑장에 도착해서도 두어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게 된다.
드디어 세팅이 끝났다. 릴렉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캔맥주를 따야 할 시간이다. 이 순간은 더운 여름에는 물론 추운 계절에도 생략할 수가 없다. 두어 시간 몸을 바지런히 놀리다 보면 한겨울에도 땀이 나고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장비를 세팅한 다음 마시는 맥주는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다. 그 맥주의 첫 모금은 아마도 모든 캠퍼들이 가장 사랑하는 맛일 것이다.
다람쥐처럼 달아났던 아이들은 텐트와 장비가 제자리를 잡을 무렵 돌아온다.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얼굴이 발그레하다. “엄마, 배고파요!!!”
나는 맥주 한캔을 다 마시지도 못하고 서둘러 아이들 음식을 준비한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프라이팬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념 고기나 소시지, 치즈 등을 올린다. 집에서는 주방 도구에 손도 까닥하지 않던 녀석들이 스스로 뒤집개를 들고 익은 고기를 뒤집는가 하면 숟가락이나 컵을 엄마 앞에도 갖다 놓는다.
“자, 맛있게 먹자~.”
맛이 없을 수 없다. 고기 한 점에 김치 한 사발의 단촐한 메뉴도 꿀맛이다. 이제야 나는 여유롭게 이 순간을 바라본다. 얼굴이 발그레한 두 아이들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밥을 먹는다.
텐트 안은 훈훈하고 아늑하다. 바쁘게 몸을 놀린 고단함이 달달한 나른함으로 밀려온다. 말아올린 텐트의 창 밖으로 초록의 들풀들이 흔들린다.
오늘 나는 이 모든 것을 선택했고 감당했다. 잡다한 생각이 지워지고 한번에 하나만 집중한다. 방금 전까지 왜 이러고 있나 싶었던 맘도 싹 씻겨나간다.
좋다. 단순하고 무심해지는 이 공간. 이래서 나는 캠핑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