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 참새, 박새같이 작은 새들은 해가 뜨기 직전에 가장 활발하게 지저귄다.
멧비둘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운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는 온 숲을 흔들어 깨운다.
이 모두 캠핑장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동이 틀 무렵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산기슭을 타고 올라와 숲의 곳곳을 꽉 채울 만큼 짙게 끼었다가도 햇살이 닿으면 순식같에 사라지고 만다.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에는 해가 저문 땅에서 유령처럼 스물스물 땅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기도 한다. 신비한 광경이다.
나와 아이들의 세포에는 나무의 반짝임과 새들의 울음소리, 들꽃과 들풀의 흔들림, 마른 솔방울과 젖은 나무토막의 감촉, 햇살과 그늘의 변화, 그리고 계절을 싣고 오는 바람의 냄새들이 각인되어 있다.
지난겨울 아이들과 외출을 하는데 아파트 현관 앞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코를 시큰하게 자극한다. 작은 아이가 무심코 내뱉는다.
“엄마, 캠핑장 냄새 나.”
“그러네, 캠핑 가고 싶어 진다.”
사춘기 이후 따님들은 이제 전처럼 캠핑을 함께 다니지 않지만 그래도 녀석들은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철 난로를 피워 훈훈한 텐트 안에서 텐트 밖으로 나갈 때 코끝이 시큰해지는 느낌. 싫지 않은 겨울의 그러한 냄새들.
자연의 경이를 체험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 캠핑은 한자리에서 오롯이 하루해를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남다르다.
도시생활자의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매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는 화장실을 참다가 방광염이 걸릴 정도로 미친듯이 바빴고, 한동안 몸담은 직장생활에서도 치열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엄마를 기다리는데도 밤늦게까지 일해야만 했던 나날. 하늘 한번 올려다보기가 어디 쉬운가.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캠핑을 떠나면 게으름도 호사다. 사이트를 정돈하고 의자에 눌러앉아 한숨 돌리고 나면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시선을 저 멀리 던진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내 왼쪽에 있던 그림자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도시에서는 시계를 통해 시간의 이동을 느낀다면 자연 속에서는 그림자의 이동으로 시간의 변화를 느낀다.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옆으로 비낀다. 나무들의 정수리를 비추던 햇살의 각도가 변한다. 나뭇가지 위쪽의 이파리 때문에 그늘졌던 아래쪽의 나뭇잎에도 햇살이 고루 가 닿는다. 나무 전체가 그늘 없이 환해진다. 공평하다. 태양은 이리 공평한 것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한자리에 앉아서 하루를 이렇게 오롯이 지켜본 적이 또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강원도에 첩첩산중 시골 외할머니댁이었다. 보이는 건 산등성이 뿐, 고개를 하나 넘으면 집이 한 채 있고, 작은 산을 넘어야 또 한 채 있던 그 시골에서 친구도 없이 아이가 할일은 딱히 없었다. 차분한 성향이었던데다 심심했던 나는 그저 툇마루에 앉아 하루 해를 지켜보며 펄럭이는 커다란 호박잎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호박꽃이 어떻게 잎을 오므리는지 지켜볼 뿐이었다. 그 날들이 내 정서에 깊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캠핑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캠핑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쩌면, 그 무심했던 유년의 정적을 다시 만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소리가 너무 많고 혼란스러울 때, 고맙게도 평화로운 정적을 찾아갈 방법이 나에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