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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작 Sep 18. 2023

여보,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요?

엄마캠핑

지금이야 여성이 혼자 캠핑을 다니는 게 별난 일이 아니지만 내가 캠핑을 시작하던 10여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성이 혼자, 그것도 딸아이 둘을 데리고 캠핑을 다닌다고 하면 고개를 돌려 다시 쳐다보는 때였다. 그 많은 짐을 나르고, 거친 야외에서 숙식을 해야 하는 캠핑을 여자 혼자? 부부가 같이 다니더라도 남편들은 한뎃잠이 불편해서 싫다는 아내를 어르고 달래어 모시고 다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있다 보면 맞은편 자리와 양 옆자리에서 흘낏흘낏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시골 동네에 못 보던 차가 들어오면 ‘누구 집으로 가는 차인감?’ 동네 주민들의 눈길이 쏠리듯, 캠핑장에서는 자리가 지정되어 있다 보니 누가 오는지, 텐트는 뭘 치는지, 인원은 몇 명인지 보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레 눈길이 가게 되다. 


그러한 캠핑장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가는 날은 좀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승용차가 한 대 들어오더니(당시 내 차는 수납공간이 큰 suv도 아니고 승용차였다) 여자 아이 둘이 내린다. 곧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어나가 사라지고 여자 혼자서 끊임없이 짐을 내린다. 

 

시선 1 : ‘저 많은 짐이 어떻게 저기 다 들어갔지? 애들까지 태우고?’


여자는 망설임 없이 텐트를 펼치고 망치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더니 커다란 텐트를 세운다. 


시선 2 : ‘어라! 혼자 치는 거야? 남편은 어디 있대?’

시선 1 : ‘이따 나중에 오 나부지 뭐.’


시선 3 : ‘그런데 저거 좀 도와줘야 되는 거 아냐? 텐트가 큰데.’

시선 4 : ‘괜히 도와준다고 나서는 건 실례일지도 모르지. 남편은 저녁에나 오려나?’


그들이 조심스레 던지는 눈길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게 본의 아니게 민폐다. 신경 쓰이게 하는 거. 그래서 나는 캠핑장에서 장비를 구축할 때 나도 모르게 더 씩씩해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텐트나 타프도 킬각을 잡는다. 여자 혼자 온 자리가 후줄근하게 보이는 건 싫다. 


“어휴~! 텐트에 손 베이겠어요.” 

킬각을 잡는 내 세팅 습관을 보면서 남성 캠퍼들이 놀림 반, 칭찬 반으로 하는 얘기들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캠핑을 다니는 여성 캠퍼가 흔치 않다 보니 사람들은 괜한 상상도 하게 된다. 왜 혼자 왔을까. 남편하고 사이가 좋지 않나? 어젯밤에 싸웠나? 아니면 혼자된 여자? 

상상력이 맘대로 뻗친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흔치 않은 상황을 만나면 사람들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 싶어 하니까. 나조차도 왜 편안한 집을 놔두고 주말의 이 고단한 행렬을 계속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하니까. 헛웃음이 나면서.


캠퍼들은 단골 캠핑장에서 금세 가까워진다. 텐트의 모양과 스타일이 각양각색이다 보니 텐트는 묘하게도 주인의 정체성을 나타내곤 한다. 텐트와 가구를 보면 멀리서도 누가 오늘 캠핑장에 왔는지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또 캠핑을 하다 보면 두고 온 물건이나 뜻밖에 필요한 물건이 생기는 경우도 많아서 설탕이나 식용유, 망치나 팩 같은 소소한 물건들을 서로 빌리는 일도 빈번하다.  

그렇게 몇 번 마주치게 되고 낯이 익게 되면 화로대 앞에서 같이 맥주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런 시간이면 넌지시 물어오는 사람도 있다. 남편이 왜 캠핑을 같이 하지 않는지, 혹시 남편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건지...... 기분 나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이 불필요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보다 차라리 물어봐 주는 것이 더 낫다. 설명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남편과 사이가 좋으니까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거죠.”  

 내 대답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문제다. 남편의 반대가 심한데도 이렇게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 가정의 불화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누군가의 상상과 달리 남편은 나의 캠핑 라이프를 존중(또는 포기 : 말릴 수 없으니까)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만 안전하게 다녀오리라 믿어준다. 그가 나의 선택을 존중하듯 나는 캠핑을 함께 즐기지 않는 남편의 선택을 존중(또는 포기 : 싸우기 싫으니까)한다. 

 취미 생활까지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야외활동이 좋은 사람이고 그는 야외 활동이 싫은 사람일 뿐. 이런 적절하고 지혜로운 타협이라니!.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흠잡을 수 없는 역할을 각자 해낸다. 

주부로서 나는 캠핑을 나가는 주말이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로 반찬을 해둔다. 내가 금요일에 빨래를 돌려서 널어놓으면 남편은 토요일에 그것을 갠다. 

집을 지키고 있던 그는 일요일에 내가 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 둔다. 놀러 간 것이긴 하지만 몸은 파김치가 되어 돌아올 나를 위해서다!!!(말다툼거리를 근절하기 위해.... 쿨럭)


 평소에 우리 부부는 식사 시간에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나는 캠핑 얘기만큼은 남편의 부재로 인해 겪는 불편과 두려움과 몸의 고단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감당할 몫이니까. 


이러한 존중과 타협이 없었다면 캠핑은 우리 부부 사이에서 꽤나 큰 분쟁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다. 서로의 세계를 인정한다는 느낌 때문에 부부간 신뢰는  더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날씨가 아름다운 봄날 캠핑장에서 그 경치를 혼자 보는 것이 아깝다. 부드러운 밤이슬이 내리는 봄밤에 타탁 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의 고요를 혼자 느끼는 것도 아깝다. 언젠가 남편은 캠핑을 다니게 될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혹시 또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녀도 캠핑이 싫어질 때가 오겠지?

  

장비를 살 때면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고, 캠핑장에 와서는 아내를 왕비처럼 모셔야 하는 어느 남성 캠퍼가 나에게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하민맘(나의 닉네임)이 장비도 다 알고, 텐트도 잘 치니까 남편이 얼마나 편하시겠어요.

남편께서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봅니다. 하하하.” 


“네~. 그분이 진짜 결혼 잘했지요?.” 

이렇게 받아넘기긴 하지만 사실 그건 우리 남편이 캠핑을 다녀야 성사되는 부러움이다. 

모든 장비를 스스로 마련하고 모든 캠핑 장비를 다룰 줄 아는 아내를 두고 있는 그 남자. 본인은 몸만 오면 되는 ‘황제캠핑’의 기회가 매번 있지만, 어쩌랴. 그는 캠핑장에 등장하지 않는 것을. 


그래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하고 남편에게 보내는 누군가의 부러움은 개그콘서트의 어느 유행어 버전으로 끝나고 만다. “아~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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