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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라자일렌 Mar 10. 2021

이란 여행 후기 2

이란의 풍속에 관하여

 이란 여행 후기 1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란 법률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에게 50,000리알에서 500,000리알 사이의 벌금 혹은 10일 이상 2달 미만의 구류를 벌칙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술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Islamic Penal Code(قانون مجازات اسلامی) 제702조에서는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누구든지 술을 제조, 음용, 판매, 판매를 위해 비치, 운송, 보관 혹은 타인에게 공여하는 자는 6개월에서 일 년의 징역, 74대의 채찍형, 그리고 그 가액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나머지는 그렇다 치고 채찍질 74대는 진짜 많이 무서울 것 같다. 아래 사진은 Iran Human Rights에서 퍼온 것이다. 왼쪽 배경에 적혀 있는 페르시아어, 집행인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복장 등을 보아하니 이란에서의 채찍질 집행 장면을 찍은 사진이 맞는 것 같다.

출처 : https://iranhr.net/fa/articles/2684/


 채찍형에 사용되는 채찍은 길이가 100~120cm이며 지름 1.5cm 정도인 끝을 매듭짓지 않은 가죽끈이다.

출처는 '이란 사법부 특별승인서 1170호 122조'이다. 참고로 '이란 사법부 특별승인서'란 다음 링크의 'قوه قضاییه ویژه نماه'를 적당히 번역한 것이다. (https://rrk.ir/Laws/ShowLaw.aspx?Code=18022)


 상기 조항 외에는 채찍 자체에 대한 별도 조항이 없기 때문에, 형태 면에서 우리가 평소 채찍 하면 떠올리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 모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채찍이라고 검색하면 '끝을 매듭짓지 않은 가죽끈'이 이란 이슬람공화국에서와는 사뭇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판매 중임을 알 수 있다. 그 목적이 고통이든지 쾌락이든지 간에 채찍의 물리적 형태는 달라지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만 몇 개 클릭해 본 결과 이란이슬람공화국에 형벌용 채찍으로 수출하기에는 길이 때문에 적합하지 않았다. 심지어 브라이덜 파티 용으로 판매되는 물건도 있었는데, 브라이덜 파티하면 호텔방에서 글씨풍선 띄워놓고 와인 까는 장면을 상상한 필자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얘기가 잠시 샜는데, 그런 의미에서 채찍질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홈파티에서 필자에게 주류를 제공한 이란 친구들의 용기와 호의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다들 별 긴장감 없이 신나게 마시는 것을 보니,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이란에서 마신 술 중 백미는 음성적으로 제조한 도수 높은 증류주인 '아라크 사기(عرق سگی)'였다. 행여나 이란인을 만나게 될 경우 아라크 사기를 언급하면 그와의 심리적 거리가 급격하게 좁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라크사기가 음성적으로 제조되다 보니 가짜 술을 잘못 마시고 병원에 실려가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아마 공업용 에탄올(에틸알코올)을 섞어서 제조하다 벌어지는 사태가 아닐까 싶다.


이란에서 마신 밀주들 - 왼쪽부터 아라크 사기, 친구네 집에서 담근 와인, 해외에서 밀반입한 와인

 공업용 에탄올이 왜 위험한지는 주세사무처리규정의 <공업용 주정변성방법>을 보면 알 수 있다.(주정이란 고순도 에탄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변성용, 쉽게 말해서 못 먹게 하려는 용도로 에탄올(에틸알코올)에 주입되는 첨가제들을 보면 그야말로 유해화학물질(화학물질관리법 참조)의 향연이다. 면세인 공업용 에탄올로 술 만들 생각 못하게 하려는 과세당국의 의지인데, 이란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먹은 아라크사기의 알코올이 공업용에탄올에서 나왔는지 곡물에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 필자는 별다른 이상증세를 경험하지 않았다.


 아라크 사기 같은 증류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밀반입하든지, 공업용 에탄올을 빼돌리든지, 아니면 발효주를 직접 증류하든지 셋 중 하나를 해야 한다. 반면 발효만 시키면 되는 와인은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쉬웠다. 친구 집에서 식사를 할 때면 종종 와인을 곁들여 먹고는 했다.


 그럼에도 이란에서 맥주는 먹어보지 못했는데, 알코올을 섭취하기 위해 법적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맥주 같은 저도수주는 가성비가 영 구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자국에서 맥주를 먹을 일이 없다가 한국에서 맥주를 처음으로 접해서 그런지, 필자가 만난 이란 유학생들은 자기들끼리도 맥주를 '맥주'라고 불렀다. 예를 들자면 맥주 마시자는 말을 페르시아어로 '맥주 보호림(مکجو بخوریم)'이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페르시아어에도 맥주를 가리키는 '업쥬(آبجو)'라는 단어가 존재함에도 말이다. 이란에는 맥주가 업쥬! 깔깔! 물론 이슬람 혁명 전에는 이란에서도 맥주를 생산했었다.


<하기 이미지 출처 : https://web.facebook.com/TarikhDarTasvir/photos/a.278604788994744.1073741859.110602525794972/438349533020268?_rdc=1&_rdr>

이슬람 혁명 전에 이란에서 생산되던 맥주의 하나인 sultanie(سلطانیه). 제조사인 마지디예مجیدیه는 이슬람 혁명 때 공장이 파괴되었다.


 이란에 존재하는 음료 중 맥주에 가장 근접한 것은 우리네 무알콜 맥주 혹은 저알콜 과일맛 음료 포지션인 델레스터دلستر이다. 한국에서의 필자 같았으면 쳐다도 안 보는 장르의 음료이지만, 친구네 집에 머무를 때 말고 혼자 돌아다녀서 술 구할 방법이 없을 때는 가끔 마시고는 했다.


마슈하드의 한 식당에서 케밥과 함께 주문한 델레 스터


 물론 델레스터 따위로 맥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귀국편 비행기에 탈 때마다 기내 서비스로 맥주를 주문했었다. 문제는 필자 말고 다른 승객들도 다들 이슬람공화국을 떠나는 순간을 맥주로 기념하고 싶어 했는지, 항상 필자 앞에서 맥주가 동났다는 것이다. 이란에서 돌아올 때마다 테헤란 - 우루무치 - 베이징 - 인천 순으로 이동했는데, 두 번째 항공편인 우루무치 발 베이징행에서 먹는 맥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란 국내에서 맥주가 생산되지 않는 이유는 맥주 특성상 다른 주종에 비해 재료와 설비의 확보가 까다로운데 이란 역내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관 주도로 시장보다 더 멋진 것을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가 맥주임을 고려하면, 이란은 지금의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도 술에 대한 금령만 푼다면 얼마든지 맛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동강맥주가 국산 맥주보다 맛있다는 점, 북베트남 맥주(하노이)가 남베트남 맥주(사이공) 보다 맛있다는 것은 맥주에서 있어서는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보다 나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동강맥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맥주공장 시찰 후 삘받은 김정일의 특별 지도로 탄생했다고 한다. 최소한 맥주 주조에서만큼은 수령의 영도력란 게 쓸모가 있는 듯하며, 체제 경쟁 중 주조 항목에서는 남한 체제의 완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국산 맥주는 맛없다는 취급을 받을까? 재작년에 친구와 칭다오 맥주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독일은 20년밖에 되지 않는 조차기간 동안 이렇게나 맛있는 맥주를 남겨놓고 갔는데 일본은 35년 동안 조차도 아니고 무려 강제병합씩이나 해 놓고 제대로 된 주류제조기술 하나 전수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 떠오른다. 혹자는 일본인들이 OB맥주의 전신인 쇼와기린맥주(昭和麒麟麦酒, 1932년 설립)를 남겨 놓고 가지 않았냐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전 일본의 공업력이 서방국가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쇼와기린맥주는 도저히 독일 맥주에 비빌 급이 아녔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한국전쟁 때 양조장이 완전히 박살이 나서 주조 장비와 기술이 죄다 소실되었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지 간에,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의 저자 이영훈 교수조차 맥주에서만큼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란 술 이야기하다가 다른 데로 샜다. 홈파티에서 만난 이란인 아저씨 한 명은 혁명 전만 해도 이란은 온갖 훌륭한 술들을 세계로 수출하는 나라였는데, 망할 어훈드(시아파 성직자에 대한 멸칭, 1편 참조)들이 오고 나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필자는 바흐만(이란 달력의 11번째 달)부터?라고 되물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여기서 바흐만이라 함은 파리로 망명했었던 호메이니가 귀국한 1979년의 그 바흐만을 말한다. 그래서 이란 국가(Sorud-e Meli-ye Iran, سرود ملی ایران)에도 바흐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바흐만, 우리 신앙의 절정이니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페르시아어 단어 farفر를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적당히 절정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였다. (하기 이미지 출처 : http://jahedkhabar.ir/1399/11/%DB%B1%DB%B2-%D8%A8%D9%87%D9%85%D9%86-%D8%A2%D8%BA%D8%A7%D8%B2-%D8%AF%D9%87%D9%87-%D9%81%D8%AC%D8%B1-%D9%88-%D8%AE%D8%A7%D8%B7%D8%B1%D9%87-%D8%A7%D8%B3%D8%AA%D9%82%D8%A8%D8%A7%D9%84-%D8%AA%D8%A7%D8%B1/)

바흐만 12일, 이맘이 오다!

 위 사진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있는 것이 바로 문제의 날짜인 '바흐만 12일'이며, 왼쪽 아래에 쓰여 있는 구절은 '혁명의 여명, 독립과 자유의 태양이 뜨다' 정도 되겠다. 구글에 페르시아어로 이맘, 바흐만이라고 검색하면 비슷한 류의 프로파간다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쯤 되면 이란에서 '바흐만'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바흐만은 하기 이미지에서 보시다시피 담배 이름이기도 하다.  


출처 : http://cito-p.ir/

  이란에서는 이처럼 샤리아 X까하고 밀주파티가 벌어지는 곳을 자유무역항 내지 경제 자유구역이라는 뜻의 반다레 어저드(Bandar-e Azad, بندر آزاد)라고 부른다. 북한으로 치면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같은 것이다.


 반다레 어저드 밖의 이란은 유흥 거리가 마땅치가 않다. 이란 친구들이랑 밤중에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다. 그 중 한 명이 갑자기 필자에게 'You wanna go to spinning ground?'라고 묻는 것이었다.(그 때는 필자가 페르시아어를 못 했다.) 필자는 스피닝 그라운드라길래 디스코팡팡에 가자는 소리인 줄 알고 '짜식들, 이슬람공화국의 밤문화는 참으로 소박하구나'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가 제안한 것은 spinning around, 즉 차를 타고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었다. 홈파티가 아닌 다음에야 이슬람공화국에 밤문화 따위는 없기 때문에 차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 할 수 있다.


-3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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