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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라자일렌 Mar 18. 2021

페르시아어, 타지크어, 다리어

Tandem에서 타지크인과 대화하다 쓰는 에세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원래 중앙아시아는 이란계 종족의 영역이었다. 중세 이래 튀르크족의 대거 유입으로 현재는 타지키스탄을 제외하면 튀르크어족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근대 민족주의의 대두 이전 페르시아어는 이 일대의 링구아 프랑카였다. 아예 모어가 페르시아어인 사람들은 타지크로 불렸다. . 


 구글링을 해 본 결과 '타지크'라는 단어는 본디 이란계 정주민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튀르크계 유목민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튀르크계가 정치적, 군사적 주도권을 쥐었던 사파비왕조 시절의 이란에서는 페르시아계 관료들이 타지크로 불렸지만, 페르시아인이 확고한 주류가 된 현대 이란에서는 페르시아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타지크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페르시아어 위키피디아에서는 타지크를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고 페르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종족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이란의 페르시아인 인구는 타지크족 인구로 집계하지도 않는다. 타지크어라는 단어 역시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사용되는 페르시아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페르시아어 사용 지역을 나타낸 지도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되는 페르시아어는 다리어로 불리는데,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본래 수많은 민족들이 뒤섞여 살며 페르시아어를 민족간 교통어로 사용하던 지역으로(사실 지금도 그렇다), 주로 이란 고원에 기반을 둔 왕조들의 지배를 받아 왔다. '파슈토어를 공용어로 하는 파슈툰족이 주도하는 국가'로서의 아프가니스탄은 지극히 최근에 와서야 탄생한 개념이다. 민족이란 본래 상상의 공동체이다. 아프간인이라는 공동체를 상상해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란인과는 확실히 다른 무엇인가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자국 내 타지크인의 모어이자 아프가니스탄의 링구아 프랑카인 페르시아어에도 다리어라는 별개의 이름을 갖다붙힌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이 보통화랑 눈꼽만큼도 mutually intelligible하지 않은 광둥어를 중국어의 방언 취급하는 것의 정반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족주의가 매우 강성하여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 한번 잘못 썼다가는 사회적 생명이 날아갈 수 있는 곳이다.(예 : 일본해. 한국인들은 일본해라는 워딩을 일본제국주의 및 독도 문제와 엮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지만 사실 일본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정착한 것은 19세기 이전의 일이다.) 때문에 필자는 아프가니스탄인, 특히 파슈툰족이나 탈레반(탈레반은 파슈토민족주의의 성격도 띄고 있다.) 앞에서 그들의 양대 공용어 중 하나를 페르시아어로 지칭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생기리라 지레 짐작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이태원 지구축제에 가서 확인한 결과, 아프가니스탄인들도 다리어 대신 페르시아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부스에 가서 페르시아어로 말을 걸었더니 바로 '페르시아어 할 줄 알아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다리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중 한 명에게 '당신이 말하는 언어가 다리어인가요 아니면 페르시아어인가요?'라고 물었더니 '둘은 똑같은 언어야! 우리는 페르시아어를 쓴다구. 다만 이란에서 쓰는 페르시아어와는 억양과 발음이 조금 다를 뿐이지. 그건 어느 언어에서나 마찬가지 아닌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 영어나 오스트레일리아 영어가 영국 영어랑 발음, 악센트, 어휘가 조금 다르다고 굳이 미국어나 호주어라는 표현을 갖다붙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떠올랐고, 그의 설명이 매우 명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란 페르시아어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아프간 페르시아어(다리어)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어(타지크어)는 알아듣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특히 타지크어가 그런데, 그래도 타지키스탄 뉴스는 그럭저럭 알아듣기 때문에 타지키스탄 외 지역에서 사용되는 타지크어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언어교환 어플리케이션에서 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 출신의 타지크인(이하 A)과 대화를 나누어보니 필자가 여태 알고 있던 페르시아어와는 차원이 달랐다.


 예를 들어 '나는 꼭 갈 것이다'를 이란 페르시아어로 하면 'Hatman miram(حتماً میرم)'인데, 사마르칸트 타지크어로는 'Albatta morom'이라고 한다. A는 꼭이라는 뜻의 'hatman'에 대해서는 아예 의미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예시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아래의 이란 페르시아어 문장은 A가 말한 사마르칸트 타지크어를 단어 단위로 번역한 것이다.) 아래 예시에서 and라는 의미의 단어(볼드체로 표기한 단어)는 서로 유사점이 눈꼽만큼도 없음에 주목하라. 


 한국어 : 안산에는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이 많이 산다.

 이란 페르시아어 : Dar Ansan Uzbeki wa Tajiki besiyor zendegi mikonan

 사마르칸트 타지크어 : Dar Ansan Ozbeko kadi Tojiko bisyor zindagoni mukunan


 A는 '표준어' 지위를 갖는 페르시아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필자의 이란 페르시아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사마르칸트 타지크어가 다리어나 타지키스탄 타지크어와는 달리 공용어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우즈베키스탄 역내에서 타지크어는 문어와 표준어로서의 지위를 갖지 않으며, 탄압받는 소수언어에 가깝다. 때문에 별도로 교육을 받거나 TV로 접하지 않으면 집안에서 일종의 사투리처럼 구전되는 타지크어가 그의 페르시아어 지식의 전부가 된다. 


 반면 다리어나 타지키스탄 타지크어의 경우는 음소 단위로 발음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적어도 문어로는 이란 페르시아어와 차이가 거의 없다. 이는 다른 언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지역이나 국가에 따른 분화가 일어나도 문어는 상대적으로 통일성이 잘 유지되며 의무교육이 문어 기반 표준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찍이 막스 바인라이히는 언어란 군대를 가진 방언이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는데, 표준어 내지 단일 언어라는 것은 결국 현대국가의 강력한 행정력 덕분에 유지되는 정치사회적 산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즈베크 민족주의가 발흥한 것은 소련 붕괴 이후라는 점, 우즈베키스탄 인구에서 타지크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국가란 것이 얼마나 쎈 놈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우즈베키스탄 인구에서 타지크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 35%까지 잡는다. 국내 체류중인 우즈베키스탄인이 6~7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2만 명 정도가 타지크인이라는 것이다. 반면 재한 이란인은 2,000명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국내 거주 이란인 친구를 만드느라 갖은 고생을 했다. 때문에 일종의 대체재로 타지크계 우즈베키스탄 친구를 사귀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동대문이나 안산에 없으면 김해(!)까지 가서 우즈베키스탄 식당이란 식당은 다 찾아간 다음에 페르시아어로 냅다 말 걸어볼 요량이었는데, 이래서야 기껏 사귀어도 영어 혹은 한국어로 대화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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