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선물이야

어디선가 오늘도 애쓰고 있는 너를 위해

by 유시안


며칠 전 집에서 멀지 않은 서점에 갔어.

무심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돌아다니던 중, 심리, 에세이 베스트 코너에 유독 ‘불안’을 주제로 한 책들이 꽤나 즐비하게 놓여 있다는 걸 깨달았어.


불안 세대,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

2025년은 유달리 ‘불안’이 주인공인 한 해였던 것 같다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안도가 됐고, 피식 - 웃음도 나왔어.


한때의 나도 늘 불안에 시달리는 ‘병’이 있다고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던 사람이었거든.





극심한 불안과 예민함이 극에 치닿으며, 밥상머리에서 매일 울부짖기를 하던 어느 날.

결국 한 심리상담소를 찾아갔어.


연륜이 꽤 있던 여자 상담사는 곱게 차려 입고, 반짝이는 눈으로 내 눈물샘을 의도적으로 자극했어.

누구보다도 잘 들어줬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요한 사건은 계속 노트에 받아적었지.


두 번째로 방문하던 날, 상담사는 처음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어.

“혹시 평소 일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편은 아니신가요? ”


그 분의 톤은 부드러웠지만, 나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파르르 떨림을 느꼈어.


섬뜩했어.

이상할 만큼 부끄러웠지.


마치 내가 저 깊숙히에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결함을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그 이후로부터 상담의 방향은 주로 ‘나’라는 사람의 문제와 행동의 패턴을 찾는 쪽으로 향해졌어.


그 날의 나에게 불안은 가장 큰 문제이자 장애라 분류 당하고 있었고,

하다 못해 나는 상담사에게 어린 시절 상처가 되었던 기억들 마저도, 불안의 근본을 마주해야 한다는 이유로 탁상위에 부끄럽게 꺼내 놓아야 했지.


정답은 ‘나의 문제’로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고

과거가 남긴 흔적들은 모두 설명되어야 하는 것 처럼 느껴졌어.


그 날 이후, 그 부끄러운 마음과 계속되는 과거사 파헤치기를 한 덕에 난 더이상 상담소를 찾지 않았어.





그 날 이후, 나는 더욱, 내 불안을 반드시 숨겨야 겠다 다짐 했어.

마치 발각되면 사람들이 달아날 것 만 같은 대작전을 펼치는 것 같이 말이야.


불안을 느낄 때마다 상담사 보다는 열배는 나았던 의사가 쥐어준 안정제 몇 알을 먹기도 했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치 배우가 된 마냥 연기를 하는 기분도 들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아이들과 인사이드아웃2 영화를 보게 되었어.

주인공 일라이는 훌쩍 사춘기 소녀가 되어, 보다 다양한 감정들이 생겨나 있었는데 -

세상에나, 그녀의 깊은 곳에 바로 ‘불안이’가 등장하더라.


불안이는 감정들 중 가장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아.

즐기거나 나태할 겨를이 없지. 실패하면 안되기 때문에 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하고, 계획하지.


불안이의 모든 계획이 실패하며 일라이의 모든 세상이 멈춰 버리던 순간, 주인공 일라이 대신 내 눈에서 왈칵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어.


불안이의 모습은, 그 간 마주했던 너무나 익숙한 내 얼굴이었거든.

얼떨결에 보게 된 아이들과의 영화에서 너무나 큰 위안을 얻게된 건,

내 안의 불안을 처음으로 세상이 손을 내밀어 꺼내 주었기 때문이었어.


불안, 이제 괜찮으니 어서 나오라고.

나와서 같이 이야기 해보자고.

마치 사랑 받는 오랜 여타의 감정들 처럼 말이야.


———


봤지?

불안을 대하는 세상의 태도는, 이제 많이 너그러워졌어.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 수록 불안의 정도가 높아지지.


떄로는 그 불안의 강도가 짙어져 당황스럽게도, 힘들게도 하지만

그걸 반드시 숨겨야 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병은 아니야.


오히려 불안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계획하거든.


나와 내 삶에 대한 가치에 그 누구보다도 진심인

불안을 가진 사람들이야 말로, 축복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오늘도 어딘가에서 불안을 숨기며,

안간힘을 쓰며 살아갈 그대들에게 따뜻한 손난로를 품에 꼬옥 건네고 싶어.


이제는 그 애를 조금 편히 꺼내놓자.


불안은 앞으로를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우리가 가진 또 다른 감각이자, 재능일 지 몰라.


때로는 나를 저 끝까지 치닫고, 지치게 만들어

엉엉 울게도 하는 나쁜 애지만.

그래도 나도 그 애고, 그 애도 나잖아.


그 애를 위한 옆 자리 한켠을 너그럽게 비워두자.

가끔은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는 그 애에게 위로를 건네어주며,

같이 걸어 보자.


불안, 니가 있는 내 삶은 축복이니까.




토요일 연재